‘하얼빈’-박성천 여론매체부 부국장
2022년 08월 22일(월) 00:30
김훈의 장편소설 ‘하얼빈’이 장안의 화제다. 올해 광복절을 앞두고 발간된 소설은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에 2주 연속 1위에 올랐다. 특유의 단문으로 인간 안중근의 고뇌를 그린 작품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더욱이 문 전 대통령이 광복절 연휴에 읽으면 좋을 소설로 ‘하얼빈’을 추천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문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작가는 하얼빈역을 향해 마주 달려가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여정을 대비시키면서 단지 권총 한 자루와 백 루블의 여비로 세계사적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섰던 한국 청년 안중근의 치열한 정신을 부각시켰다”고 호평했다.

김훈의 소설 가운데 ‘하얼빈’과 함께 연상되는 작품이 바로 ‘칼의 노래’다. 임진왜란 당시 ‘난중일기’를 모티브로 이순신의 고뇌를 그린 소설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세계 문학 총서’로 번역될 만큼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한편으로 소설에는 풍전등화 위기 속에서 백성의 안위보다 종묘사직에 집착하는 조선의 집권층에 대한 비판과 냉소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지금 이 시기에 침략국인 일본과 연계된 역사 소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혹여 독자들은 우리나라를 둘러싼 세계 정세에 대해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사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은 약소국의 민초들이다. ‘칼의 노래’와 ‘하얼빈’에는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피눈물나는 고통과 슬픔이 절절히 묘사돼 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어쩌면 쉽게 잊어버린 억압과 수탈의 역사에 대한 경고일지 모른다.

김훈은 ‘하얼빈’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성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실탄 일곱 발이 쟁여진 탄창 한 개, 그리고 ‘강제로 빌린(혹은 빼앗은)’ 여비 백 루블이 전부였다.”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급변하는 국제 질서에 대응해야 할까. 청년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둘 수 없는 이유다.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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