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주택 정책-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2년 08월 18일(목) 00:30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이 막 시작된 시기, 런던을 비롯해 맨체스터·요크·리버풀 등의 도시들은 갑작스런 인구 증가로 어려움을 겪었다. 갈 곳이 없어진 소작농들이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도시의 공장에 취업하거나 빈민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겨우 잠만 잘 수 있는 부실 주택에 머물렀다. 하루 종일 햇빛은 볼 수 없었고, 수도·하수 시설도 없어 집 주변 진흙탕으로 오폐수가 흘렀으며, 자재를 대충 엮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전염병과 재해의 원인이 되는 엉터리 주택이 범람하자 도시학자·전문가들이 대책을 촉구했고, 정부와 도시 지자체 역시 점차 이를 인정하게 됐다. 이에 앞장선 대표적인 학자는 존 러스킨·패트릭 게데스·카밀로 지테 등이었다. 이들의 노력은 영국 정부를 움직여 1845년 토지법, 1847년 도시개선법, 1875년 공중보건법에 이어 1890년 노동계급 주택법을 제정하면서 도시 환경과 주택에 대한 기본적인 규제가 가능해졌다.

이들 법안은 ‘돈벌이’에만 급급한 건축주·토지 소유주·자본가 등에 맞서 최소한의 도시 및 주거 환경을 갖추기 위해 공공이 개입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특히 노동계급 주택법은 공공의 임대주택 건설, 빈민 지역 수용 및 정비 등을 명시하면서 민간에게 내맡겼던 주택 문제를 사회 모두가 해결해야 할 의무로 규정했다는데 그 의의가 크다. 일부 자본가들도 협동 주택, 자립 주택 등 질 높은 주거 단지를 조성해 혁신을 이끌었다.

최근 수도권의 집중호우로 반지하 방이 영화 ‘기생충’ 이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일가족 세 명과 또 다른 기초생활수급자 한 명이 잇따라 숨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을 주거용으로 세를 주며 돈을 버는 건축주들, 이를 허가해 주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이 없을 수 없다.

130여 년 전 영국에서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의 도시에서도 모두가 일정 수준의 주거 복지를 누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제와 공공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건설업체와 부유층 등에게만 특혜를 안겨 주는 대규모 민간 주택 공급 방안과 규제 완화를 되풀이해서는 주거 양극화의 심화와 빈곤층의 희생만 되풀이될 뿐이다.

/chadol@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