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에 갇힌 진리의 장미에 대하여-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2년 07월 11일(월) 00:45
요즘처럼 어디를 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겹겹의 상황은 모두를 우울하게 하고, 서로를 불신과 무력함의 불행한 감정으로 몰아넣는다. 이 어둠의 터널은 어디까지고, 그 끝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만나게 될 것인가? 이럴 때 다시 꺼내 들게 되는 고전이 ‘장미의 이름’이다. 기호학자이기도한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낭만적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룬다. 한 시대의 정신과 삶이 ‘진리’라는 힘에 의해서 어떻게 좌우되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에코의 말처럼 ‘좋은 작품은 시대와 독자들에 의해 끝없이 해석되어지는 것’이라면 이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 ‘장미의 이름’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이라는 이 한 구절은 진리의 덧없음을 비유한다. 절대적인 것도, 영원한 것도 그저 인간의 욕망과 탐욕일 뿐 그 유용함이 다한 진리는 공허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작품은 중세의 이탈리아 수도원의 1327년 11월을 무대로 한다. 어느 한적한 수도원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는데, 희생자들은 도서관의 책을 다루는 수사들이다. 따라서 이 모든 살인 사건의 중심에 수도원의 도서관이 있다. 자연스럽게 도서관은 지식 습득을 위한 곳이 아니고 감시와 통제의 공간이 된다. 도서관이 진리와 지식의 저장소이자,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진리가 갇힌 밀실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참된 것, 옳은 가치로 이해한다면 종교적 의미만 생각할 이유는 없다. 사회적·공적 영역과 학문 분야, 개인의 삶에서도 진리라고 여기는 가치들, 즉 정의와 공정, 공존의 미래 등은 늘 존재하며 우리의 삶에서 작용한다. 작가가 문제로 보는 것은 하나의 진리를 유일한 것으로 믿으며,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다. 이 절대화는 모두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진리를 빙자해서 자신의 독단을 우상화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 또한 인간의 욕망을 위한, 언제가는 사라질 많은 장미 중 하나의 ‘장미의 이름’에 불과할 수 있다.

수도원 살인 사건의 핵심은 웃음의 힘과 그 특별한 파괴력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항해서 싸우는 노수도사의 목숨 건 의지와 집착이 다른 한 쪽의 축이다. 이 수도사는 웃음을 경외심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는 힘, 즉 악마적인 힘이라고 여긴다. 절대적 가치와 권위가 웃음의 힘에 의해서 무너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절대적 진리의 수호자인 호르헤에게는 웃음의 악마성을 알게 된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것이 곧 신성한 진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는 웃음에 관한 책을 도서관 깊숙이 숨겨 두고 책장마다 독을 발라 놓는다. 책에 손을 댄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호르헤에게 웃음은 금욕과 경건, 절대복종을 전제로 하는 진리의 적, ‘이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헤 수도사가 앞을 못 보는 것은 새로운 진리에 대한 거부와 부정에 대한 은유이다. 또한 그는 웃음이 곧 삶의 능력이자 긍정이며, 자기의 한계와 부족함을 인정하며 두려움을 넘어서는 자기확장이라는 인식에 대한 무지의 상징이다.

과거의 가치로 미래를 지배하려는 눈 먼 수도사에게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진리, 즉 옳음의 가치는 여러 가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광신적 집착과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는 오만함이다. 이는 자신의 진리와 다른 생각은 ‘틀린 것’으로 단죄하는 진리의 사유화와 독단일 뿐이다. 이러한 욕망에서 우리는 왜 벗어나지 못하는가. 진리의 독점이 곧 권력를 독점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선함과 참된 것에 대한 호르헤 수도사의 맹신이 곧 권력의 독점이다. 하지만 작가는 복수의 가치를 부정하고 오직 자신의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고 강조한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먼저, 때로는 자기 대신 죽게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적지 않은 눈 먼 호르헤 수도사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악마가 된 호르헤가 아닌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단 하나의 길, 열린 사회의 길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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