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정신
2022년 01월 17일(월) 01:30
기독교 역사에서 전남 여수는 순교 정신이 깃든 지역 가운데 하나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당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의 고귀한 흔적이 남아 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는 손양원(1902~1950) 목사는 여순사건 때 폭도들에 의해 두 아들을 잃었지만 그 원수마저 양아들로 삼았다. 이후 한센병 환자와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헌신했다. 하지만 6·25전쟁 당시 인민군의 총살로 순교했다.

‘제2의 유관순 열사’라 불리는 윤형숙 전도사(1900~1950) 또한 여수가 배출한 신앙인이다. 그녀는 광주 수피아여학교 재학 중 3·1운동 만세시위를 벌이다 일본 경찰이 휘두른 칼에 왼팔을 잃었다. 옥고를 마칠 즈음에는 고문 후유증으로 실명에까지 이른다. 출옥 후 고향으로 내려와 여수제일교회 전도사로 봉사하던 중 역시 6·25 때 공산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한국인 최초 목사였던 이기풍(1868~1942) 선교사의 발자취도 여수 지역 곳곳에 남아 있다. 설립된 지 100년이 넘는 금오도 우학리 교회는 이 목사가 마지막으로 시무했던 교회다. 제주도 선교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부임한 이곳에서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붙잡혀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교한다.

이처럼 한국의 기독교 특히 여수 기독교는 순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여수 대형 교회인 은파교회(예장통합)가 세습 금지법을 어기고 부자(父子) 세습(世襲)을 강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총회법은 ‘은퇴하는 위임목사의 직계비속 등은 위임목사나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은파교회는 교회 안정을 이유로 올해 말 퇴임 예정인 아버지 목사의 뒤를 이어 아들 목사를 청빙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독교의 본질은 십자가에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위해 십자가를 지라고 명한다. 그러나 일부 목회자들은 본연의 가치를 도외시한 채 기득권과 지위, 돈을 대물림하기 위해 교회를 사유화하고 있다. 그들에게 손양원·이기풍 목사와 윤형숙 전도사의 순교 정신은 한낱 장식품에 불과한 것인가.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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