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변 헌책방
2022년 01월 11일(화) 03:00
동식물처럼 책 또한 생명력을 갖는다. 독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은 베스트셀러는 쇄(刷)를 거듭하며 출판시장에 쏟아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양서라 하더라도 절판(絶版)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발간된 지 오래된 데다 더 이상 출판되지 않은 책들은 자연히 헌책방에서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수년 전 일본 도쿄 여행길에 ‘헌책방 거리’인 진보쵸(神保町)를 찾았다. 딱히 특정 책을 사기 위함이 아니라 성업 중인 헌책방 거리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워낙 지역이 넓고 가게가 많아 헌책방 거리 지도를 따로 챙겼다. 거리를 걷는 동안 마주하는 가게마다 서가에 헌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매대에 책들이 묶음으로 쌓여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세태가 변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광주시 동구 계림동 헌책방 거리와 비교됐다.

구례구역 맞은편인 구례읍 신월리 섬진강변에는 이색적인 헌책방이 하나 있다. 지난 2020년 11월 문을 연 ‘섬진강책사랑방’이다. 부산광역시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40여 년간 헌책방을 운영했던 ‘책방지기’ 김종훈(70) 대표가 강변 3층 폐모텔을 매입한 뒤 개·보수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공간을 준비하던 2020년 8월에 1층까지 강물이 밀려들어오는 홍수로 수만 권의 책이 못쓰게 되는 수마(水魔)를 겪기도 했다.

얼마 전 이곳을 찾아 서가를 둘러보던 중 진귀한 ‘보물’을 발견했다. 고(故) 한창기(1936~1997) 선생이 신군부정권에 의해 월간 ‘뿌리깊은 나무’가 폐간된 뒤 심혈을 기울여 펴낸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전 11권) 시리즈였다. 꼭 갖고 싶었던 책인지라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었다. 1976년 출간된 문고본 ‘한국고대사론’(이기백 저) 2판 등 몇 권을 추가로 구입했다.

이런 게 헌책방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뜻하지 않은, 기대 밖의 책을 만나는 행복감 같은 것…. 앞으로 섬진강변 헌책방이 책을 읽지 않는 IT시대에 출판문화 사랑방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당신도 언젠가 짬을 내 섬진강물과 지리산 풍경이 어우러진 헌책방을 찾아 ‘나만의 책’을 찾아보시길….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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