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침대축구’
2021년 12월 30일(목) 23:10
대통령 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침대축구’라는 말이 느닷없이 정치판에 등장했다. ‘침대축구’는 자기 팀이 유리한 점수로 이기고 있을 때 작은 몸싸움에도 일부러 넘어져 일어나지 않고 시간을 끄는 행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흔히 중동 축구를 비난할 때 쓰이는 이 말이 최근 대선판에서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대선에서 TV토론은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최소 횟수 세 차례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토론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토론을 하게 되면 결국은 싸움밖에 안 난다”면서 “정책 토론 많이 하는 게 후보 검증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 기댄 일종의 ‘침대축구’ 전략이다.

이런 전략을 모를 리 없는 민주당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할 때도 토론을 하는데 대선에서 토론을 기피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재명 후보도 “논쟁이 벌어지고 서로 설득하고 타협해야 하며 이를 회피하면 정치를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여기에 “입장이 다른 사람이 당연히 존재하고, 이것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정치”라며 점잖은 훈계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선에서 후보자들의 TV토론은 중요한 선거 절차 중 하나였다. 국민은 토론을 통해서 후보가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끼고, 감으로 판단하며, 이성적으로 수용한다. “토론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토론 없이 세상을 바꿀 수도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토론은 후보를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니 토론에 참여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본 예의라고도 할 수 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침대축구는 스코어가 뒤집히면 금세 사라진다. 최근 잇따라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후보의 상승세와 윤석열 후보의 하락세가 뚜렷하다. 축구로 말하면 이미 역전골이 터진 상황이다. 토론 중 발생할 수 있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겠지만, 이제 ‘부자 몸조심’할 상황은 지난 것 같다. 윤 후보의 ‘침대축구’ 전략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선수가 그라운드에 드러누운 채로는 골을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유제관 편집1부장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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