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유세
2021년 12월 24일(금) 01:00 가가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이 빠뜨리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있다. 바로 재래시장이다. 구의원부터 대통령 선거 후보까지 출마자들이면 누구나 선거운동 장소로 택하는 곳이 시장이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도 서울은 물론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시장을 찾아 유세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역대 집권 여당 대표나 국무총리들도 경제 위기 시 시장을 찾아 서민들과 소통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
이처럼 정치 지도자들이 시장을 찾아 민심을 파악하는 행위는 조선 후기 ‘공시인 순막’ 제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조정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던 공인과 시전 상인을 합해 부르던 용어가 공시인(貢市人)이다. 순막은 ‘고질적인 폐단에 대해 묻는다’는 뜻이다. 즉 왕이 직접 시장에 나가서 상인들의 고충을 청취하는 제도로, 요즘 말로는 ‘국민과의 대화’인 셈이다.
영조가 왕이었던 18세기는 한양 도성민의 절반이 상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은 중요한 왕의 업무였다. 상인들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애로를 해결하는 것은 곧 민생을 해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행사는 조선 말까지 이어져 오다가 갑오개혁 이후 폐지됐다. 이후 공시인 순막이 다시 등장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였다.
일부 역사가들은 공시인 순막은 절대자인 왕이 불쌍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어 민심을 달래는 행위로, 왕조시대의 산물이라고 평가한다. 즉 양방향 소통을 하는 현대 ‘국민과의 대화’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시장을 찾는 행위를 서민 코스프레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는 시장 상인들이 수적인 면에서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서민을 대변할 수 있는 계층으로 보기에는 무리일 뿐만 아니라 서민도 아닌 정치인들이 때만 되면 나타나 떡볶이와 어묵을 먹는 장면도 물린다는 지적도 있다.
유권자들은 알고 있다. 후보들이 시장에서 실제 국민과 소통을 하기보다는 소통하는 후보로 비치길 바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같이 국민과의 소통이 어렵지만, 그럴수록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
유권자들은 알고 있다. 후보들이 시장에서 실제 국민과 소통을 하기보다는 소통하는 후보로 비치길 바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같이 국민과의 소통이 어렵지만, 그럴수록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