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
2021년 12월 14일(화) 02:00 가가
매서운 추위가 찾아왔다. 간밤에는 금세 눈이라도 뿌릴 듯한 기세로 밤하늘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출퇴근길에 사람들은 된바람 속에서 옷매무새를 고쳤다.
오래 전, 초겨울 산행 도중 뜻밖에 첫눈을 만난 적이 있다. 멀리서부터 구름인 듯 안개인 듯 하얀 무언가가 몰려왔다. 눈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흩날리는 눈송이임을 알 수 있었다. 졸지에 눈보라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책꽂이에서 몇 권의 시집을 꺼냈다. ‘첫눈’을 소재로 한 시들을 찾아 천천히 읽어 본다. “한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네/ 마실 물과 먹을 빵 걱정 속으로/ 마을들이 싸리꽃처럼 꽃불을 틔우고 있네/ 인간의 사랑이 팔만사천 년 지속된다는/ 빈 땅의 이름들이 바람에 서걱거렸네…”(곽재구 ‘첫눈-미륵을 위하여, 운주사에서’)
“첫눈 오시는 날 당신의 떠나가던 멀어가던 발자국/ 하얀 눈길에는 먼 기다림이 남아 노을로 졌네/ 붉게 타던 봉숭아 꽃물 손톱 끝에 매달려/ 이렇게 가물거리는데/ 당신이 내게 오시며 새겨 놓으실 하얀 눈길 위 발자국/ 어디쯤인가요…” (박남준 ‘당신 첫눈’중)
“…한 끼의 마른 흑빵을 사기 위해/ 영혼마저 팔고 돌아서던 길/ 발아래 밟히던 첫눈은 어떠했을까/ 낙엽의 거리에 눈이 내리면/ 발자국 무성했던 대지도 시리지 않겠다.”(송종찬 ‘첫눈은 혁명처럼’)
시인들은 ‘첫눈’을 키워드로 각자 다른 시어를 읊조린다. 운주사 미륵상과 눈길 위 발자국, 마른 흑빵의 이미지가 눈과 오버랩 된다. 특히 러시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송 시인의 첫눈은 연방이 붕괴된 이후의 힘겨운 경제적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모두들 마음이 굳어 있는 듯하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으니 그럴 만하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거친 말과 행동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때일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하게 이어 줄 ‘인정’(人情)과 상대 입장을 생각해 주는 ‘배려’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충장로에서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린다. 코로나와 한파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겨울이면 좋겠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오래 전, 초겨울 산행 도중 뜻밖에 첫눈을 만난 적이 있다. 멀리서부터 구름인 듯 안개인 듯 하얀 무언가가 몰려왔다. 눈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흩날리는 눈송이임을 알 수 있었다. 졸지에 눈보라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시인들은 ‘첫눈’을 키워드로 각자 다른 시어를 읊조린다. 운주사 미륵상과 눈길 위 발자국, 마른 흑빵의 이미지가 눈과 오버랩 된다. 특히 러시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송 시인의 첫눈은 연방이 붕괴된 이후의 힘겨운 경제적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모두들 마음이 굳어 있는 듯하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으니 그럴 만하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거친 말과 행동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때일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하게 이어 줄 ‘인정’(人情)과 상대 입장을 생각해 주는 ‘배려’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충장로에서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린다. 코로나와 한파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겨울이면 좋겠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