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2021년 12월 13일(월) 02:00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하늘에 새가 날아다녔다.”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과거 민주주의가 온전히 정착하지 못했던 시절,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세간에 떠돌던 풍문 중 하나다. 여기 나오는 새는 진짜 하늘을 나는 ‘새’(鳥)가 아니라 돈을 세는 단위 중 하나인 ‘조’(兆)다. ‘과거의 한때 대통령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이 수조 원에 이르렀다’는 ‘믿거나 말거나’식 소문 정도로 이해를 하면 될 것 같다.

지금이야 정치자금법이 워낙 엄한 데다 시민들의 준법의식도 높아지면서 ‘돈을 주고 표를 산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한 ‘지라시’ 정도로 받아들여져 온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모 대기업이 백억 원대의 현금을 실은 트럭을 통째로 모 정당에 전달했던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이 있었으니 말이다. 1997년 대선당시 국세청을 동원해 대기업에서 불법 선거자금을 조달한 ‘세풍’(稅風)이나 안기부를 통해 불법자금을 모은 ‘안풍’(安風)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먼 과거 일 같지만 아직까지도 ‘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대통령 선거를 3개월 남겨 두고 여야가 역대 최고 수준의 ‘쩐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터이다.

여야 대선후보는 최근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에 따른 피해 보상 차원에서 50조~100조 원대의 ‘손실보상금 지원’을 앞다퉈 제안하고 있다. 물론 이들 대선 후보들이 제시하는 50~100조 원은 ‘검은 비자금’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손실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국가 예산에서 지급되는 돈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의명분이 있고 또 실제로 필요한 정책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처럼 여야가 정치적 공방만 계속한다면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의심과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 지금 당장, 50조든 100조든 여야 합의로 지원을 확정 짓는 것은 어떨까. 여당이든 야당이든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라는 진정성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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