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자는 죽었어도 학살의 역사는 살아 있다-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2021년 12월 06일(월) 03:00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수많은 백성들을 학살해 놓고도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일이 잘못이라는 것도 모르는 자가 자연사했다. 정권 탈취를 위해 그렇게 많은 생명을 죽이고도 뻔뻔하고 후안무치하게, 양심을 거역하고 반성과 사과의 한 마디 말을 남기지 않은 채 그냥 민낯으로 죽어 버렸다. 고대의 현철(賢哲)은 말했다. 죽음에 이른 인간은 반드시 착한 말 한마디는 하고 간다고. 그러나 가장 야만적인 이 학살자 전두환은 죽음에 임해서도 끝내 착한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저승으로 가 버렸다.

그래도 ‘한겨레신문’과 ‘광주일보’ 등 몇 개의 언론기관이 있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 언론에서 ‘학살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면, 우리 같은 5월 관계자가 사용했다면, 반드시 지역감정이니 진영 논리니 호들갑 떨면서 얼마나 지독한 욕설로 우리를 매도했을 것인가. 보수 언론의 발악을 막아 준 진보 신문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악독한 학살자의 집권 기간에 ‘정치는 잘 했다’라고 역사를 왜곡한 정치 지도자라면, 전두환 사망 후 몇몇 신문이 보여 준 그 혹독한 철권정치의 실상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를 권한다.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공정한 세상과 법질서 확립을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떠들며 다니고 있으니 이 나라 앞으로의 역사가 참으로 두렵기만 하다.

1980년 5월, 우리 광주 시민들은 명확하고 분명하게 학살의 현장을 목격했다. 그렇게 많은 목격자들이 그대로 살아 있는데, 아니 당시 계엄군의 조준 사격이 자위권의 발동이라거나 정당방위의 발포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천인공노할 일이 아닌가. 60만 군대가 38선을 지키며 북한군의 침입을 막고 있는데, 어떻게 300명의 무장 북한군이 넘어와 5월의 광주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인가. 그런 새빨간 거짓말로 광주의 진실을 묻히게끔 하는데, 그런 거짓말에 동조하면서 민주화운동을 민중 폭동으로 매도한다면, 하늘이 그냥 보고만 있을 줄 아는가.

우리 시대의 민중 시인이자 전사(戰士) 시인이었던 고 김남주의 시 ‘학살 1, 2’를 읽어 보자. “… 80년 오월의 어느 날/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 이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이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자와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은 집이 없었고/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피를 토하는 김남주의 시는 잊혀만 가는 학살 현장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해 준다. 그는 광주 감옥에서 징역을 살면서 뒤에 들어온 5·18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두환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인데도 두려움 없이 그런 시를 읊을 수 있었던, 용감하고 투쟁적인 시인이었다.

전두환의 시체가 화장되어 묻힐 곳이 없어 집의 방으로 들어온 직후, 진보 신문들은 또 사설을 통해 독재자요 학살자인 전두환의 악행을 폭로하였다. ‘학살자 전두환’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생전의 전두환은 권력욕으로 가득한 잔인한 독재자였다”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는 그런 잔인한 독재자의 철권정치에 숨을 못 쉬며 살아왔지만, 죽어 간 민주투사들을 생각하면서 아프다고 말도 못하며 목숨을 이어 왔다. 우리보다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권력에서 내려온 뒤에라도 한 마디의 사과라도 듣기를 원했지만, 그는 끝내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 뻔뻔스럽게 자연사하고 말았다. 대신 사과한다는 그의 부인 또한 남편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사과’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과’로 우리 모든 국민을 우롱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5·18 희생자들의 억울함보다 더 억울한 일은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사과 한 마디를 받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던 점이다. 죽어서도 더 큰 억울함이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살아남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은 전두환의 재산을 모두 환수하고, 유족들로부터라도 진정한 사과를 받도록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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