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모두 꼰대인가?-배주은 동신대 물리치료학과 2년
2021년 11월 23일(화) 00:15 가가
한때 20대들의 필독서였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021년 현재 ‘꼰대 문화’의 상징이 돼 버렸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더 이상 덕담이 아니라, 현실을 전혀 모르는 ‘꼰대의 언어’가 돼 버렸다. 요즘 10대와 20대는 ‘아프면 환자지’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도 고생’이라는 말로 4050 부모 세대의 꼰대 문화에 반격하고 있다.
‘꼰대’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이르는 은어다. 자신의 생각이나 방식이 항상 옳다고 여기는 권위적인 사람을 흔히 이렇게 부른다. 또 어른들이 권위적인 사고를 가지고 강압적으로 학생이나 아랫사람을 훈육할 때, 우리는 그 상황을 보고 소위 ‘꼰대질’이라고 표현한다.
꼰대의 유래는 여러 가지의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프랑스어 ‘콩테’(comte)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프랑스어로 ‘comte’는 백작, 영주와 같은 지체 높은 귀족을 뜻하는 단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매국노 이완용이 일제 강점기 때 자신을 콩테(백작)라고 부르며, 귀족 행세를 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런 이완용이 하는 짓거리를 비꼬며 ‘콩테 짓’이라고 표현했다. ‘콩테 짓’이 일본식 발음으로 변형되면서 ‘꼰대’가 됐다는 설이 현재 가장 설득력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꼰대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는 과하지 않고 때에 맞게 사용했다. 하지만 점점 단어 사용이 빈번해졌고 이제는 본인보다 어른인 사람을 보면 꼰대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하는 쓴 소리는 곧바로 꼰대질이 돼 버리고 있다.
솔직히 인생을 살아온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 그 경험을 먼저 해본 사람으로서 걱정과 애정 어린 마음에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는데, 그 조언들이 그저 듣기 싫다는 이유로 그런 마음을 꼰대라는 단어 하나로 치부하는 건 옳지 않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서 살 수 있는가? 본인이 듣기 싫더라도 그 말이 옳은 말이라면 새겨들어야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꼰대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꼰대가 맞다. 현재 젊은 층들이 겪는 고난들이 당신들 세대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한 태도, 우리가 겪는 일들을 ‘그깟 일’로 정의해 버리는 말투를 쓰는 어른들은 꼰대다.
하지만 젊은 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어른들의 말을 무조건 ‘꼰대질’로만 받아들인다면 그들 또한 ‘젊은 꼰대’일 수밖에 없다.
꼰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 능력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와 MZ세대가 함께 있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세대 간의 소통이 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만 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태도가 바로 ‘꼰대질’인 셈이다.
어른들은 MZ세대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들어주면서 본인의 생각을 얘기하되, ‘난 이랬었는데, 너라면 또 다를 수도 있지’와 같은 대답으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매콤한 떡볶이가 먹고 싶을 수 있다. 외롭긴 하지만 구속받기 싫을 수 있다. 초등학생이 명품을 살 수 있다. 해봤지만 모를 수 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이렇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냥 그렇게 두면 된다. 공감은 ‘내가 만약 저 사람이라면?’이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다. ‘저 사람은 그냥 저렇구나’라고 인정하는 것이 공감의 시작점이다.
각 세대마다 이야기를 많이 하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며 모든 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사회가 되면 꼰대라는 단어는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꼰대의 유래는 여러 가지의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프랑스어 ‘콩테’(comte)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프랑스어로 ‘comte’는 백작, 영주와 같은 지체 높은 귀족을 뜻하는 단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매국노 이완용이 일제 강점기 때 자신을 콩테(백작)라고 부르며, 귀족 행세를 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런 이완용이 하는 짓거리를 비꼬며 ‘콩테 짓’이라고 표현했다. ‘콩테 짓’이 일본식 발음으로 변형되면서 ‘꼰대’가 됐다는 설이 현재 가장 설득력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서 살 수 있는가? 본인이 듣기 싫더라도 그 말이 옳은 말이라면 새겨들어야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꼰대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꼰대가 맞다. 현재 젊은 층들이 겪는 고난들이 당신들 세대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한 태도, 우리가 겪는 일들을 ‘그깟 일’로 정의해 버리는 말투를 쓰는 어른들은 꼰대다.
하지만 젊은 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어른들의 말을 무조건 ‘꼰대질’로만 받아들인다면 그들 또한 ‘젊은 꼰대’일 수밖에 없다.
꼰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 능력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와 MZ세대가 함께 있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세대 간의 소통이 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만 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태도가 바로 ‘꼰대질’인 셈이다.
어른들은 MZ세대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들어주면서 본인의 생각을 얘기하되, ‘난 이랬었는데, 너라면 또 다를 수도 있지’와 같은 대답으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매콤한 떡볶이가 먹고 싶을 수 있다. 외롭긴 하지만 구속받기 싫을 수 있다. 초등학생이 명품을 살 수 있다. 해봤지만 모를 수 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이렇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냥 그렇게 두면 된다. 공감은 ‘내가 만약 저 사람이라면?’이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다. ‘저 사람은 그냥 저렇구나’라고 인정하는 것이 공감의 시작점이다.
각 세대마다 이야기를 많이 하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며 모든 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사회가 되면 꼰대라는 단어는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