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의복 생활을 바라며-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1년 11월 01일(월) 05:00 가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을 느끼기도 전에 갑자기 옷깃을 여며야 하는 날이 왔다. 여름옷이 빼곡히 걸려 있는 정신 사나운 옷장을 마지못해 정리할 때가 왔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는 늘 의복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엄마 옷장을 넘보았다. 1983년 교복 자율화를 맞은 축복(?)받은 패션 키즈 세대답게 중학생이 되자 80년대 패션 성지 명동에 위치한 ‘빌리지, 포스트카드, 명동의류’ 등 당시 ‘핫플’(Hot place)이던 의류 매장을 들락거렸다. 그곳에서 언니 오빠들 사이를 비집고 강한 전투력을 발휘하며 옷을 사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 후 어디서고 옷을 발견하는 힘은 무럭무럭 커 갔다. 전국 곳곳으로의 원정은 인도의 길거리나 이탈리아 골목길의 작은 공방과 상점 등 국외로까지 뻗어 갔다. 가는 곳마다 나름의 문화 다양성을 핑계로 옷을 사곤 했다.
게다가 의복에는 인류학과 역사·지리 그리고 과학과 미학 등 그야말로 실용에만 그치지 않은 광범위하고 숭고한 학문이 모두 담겨 있다는 극단적인 발상으로 다양한 의복 생활을 즐겨왔다. 결국 나는 몇 해 전부터 해외 패션몰을 비롯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브랜드들의 앱까지 스마트폰에 깔아 놓고 전 지구적 패션 트랜드를 쫓아다녔다.
그런 내게 서쪽에서 해가 뜰 만한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야말로 COVID19로 담아 두기 바빴던 방구석 쇼핑 장바구니를 모두 비우고 바른 의복 생활을 해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런 신통한 효험은 영화 한 편을 보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감독 앤드류 모건 (Andrew Morgan)의 ‘더 트루 코스트’ (The True Cost, 2015). 패션 이면의 노동과 환경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이 영화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사들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얼마나 가혹하게 노동을 착취하는지, 생산과 유통 그리고 시장에서 소비되고 버려지는 의류 폐기물로 환경에 어떤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지를 낱낱이 보여 준다.
모두들 한 벌쯤은 갖고 있을 법한 패스트 패션은 빠른 조리 과정을 거친 패스트푸드처럼 시시때때로 변하는 유행에 발맞춰 저가의 의류를 빠르게 대량 생산하고 판매하는 패션 상표와 그 업종을 의미한다. 스파(SPA, 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자라, H&M, 유니클로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많은 브랜드들이다. 트랜드를 앞세우며 새로운 상품을 엄청난 양으로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의류 폐기 문제가 환경 문제로 크게 대두되면서 이들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이제 약간의 변화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지속 가능’(sustainable), ‘컨셔스’(conscious: 의식 또는 자각) 등의 슬로건을 내세우며 실제 영화에서 다룬 문제들을 보완한 제품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옷의 사용주기를 더욱 짧게 만들며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은 여전히 피할 수 없다.
시대를 반추해 온 패션(fashion)은 의복의 유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패션은 행위나 활동하는 것 또는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팩티오’(factio)란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그리하여 사전적 의미에서 유행하는 ‘양식, 방식, 형, 관습, 습관’ 등을 아우르는 실로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패션이 곧 라이프스타일인 것이다. 따라서 패션은 단순히 유행을 좇아 더 자주 사고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생활양식을 만들어 가는 행위이다.
그동안 못 미더워하던 가족이 나의 새로운 의(衣)생활 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떤 옷을 사고 입는지는 모두에게 있어 선택 사항이다. 하지만 우리는 옷을 사면서 누군가의 노동을 부당하게 착취하거나 지구의 오염을 가중시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옷장을 열고 갖고 있지 않은 옷을 찾기보다는 예전부터 입어 온 옷을 맵시 있게 다시 입어 보는 것은 어떨까?
요즘 추세대로 모두가 추구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라면 환경운동은 더 이상 운동이 아닌 우리의 생활이자 일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유행이 좀 지난 옷을 입는 것이 오히려 유행을 뛰어넘는 의로운 의복 생활의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늘 의복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엄마 옷장을 넘보았다. 1983년 교복 자율화를 맞은 축복(?)받은 패션 키즈 세대답게 중학생이 되자 80년대 패션 성지 명동에 위치한 ‘빌리지, 포스트카드, 명동의류’ 등 당시 ‘핫플’(Hot place)이던 의류 매장을 들락거렸다. 그곳에서 언니 오빠들 사이를 비집고 강한 전투력을 발휘하며 옷을 사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 후 어디서고 옷을 발견하는 힘은 무럭무럭 커 갔다. 전국 곳곳으로의 원정은 인도의 길거리나 이탈리아 골목길의 작은 공방과 상점 등 국외로까지 뻗어 갔다. 가는 곳마다 나름의 문화 다양성을 핑계로 옷을 사곤 했다.
시대를 반추해 온 패션(fashion)은 의복의 유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패션은 행위나 활동하는 것 또는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팩티오’(factio)란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그리하여 사전적 의미에서 유행하는 ‘양식, 방식, 형, 관습, 습관’ 등을 아우르는 실로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패션이 곧 라이프스타일인 것이다. 따라서 패션은 단순히 유행을 좇아 더 자주 사고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생활양식을 만들어 가는 행위이다.
그동안 못 미더워하던 가족이 나의 새로운 의(衣)생활 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떤 옷을 사고 입는지는 모두에게 있어 선택 사항이다. 하지만 우리는 옷을 사면서 누군가의 노동을 부당하게 착취하거나 지구의 오염을 가중시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옷장을 열고 갖고 있지 않은 옷을 찾기보다는 예전부터 입어 온 옷을 맵시 있게 다시 입어 보는 것은 어떨까?
요즘 추세대로 모두가 추구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라면 환경운동은 더 이상 운동이 아닌 우리의 생활이자 일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유행이 좀 지난 옷을 입는 것이 오히려 유행을 뛰어넘는 의로운 의복 생활의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