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만 난무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
2021년 10월 06일(수) 00:40

정후식 논설실장·이사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다섯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후보 선출을 위한 여야 정당의 경선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경선도 어느덧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재명 경기 지사는 그동안 지역 순회 경선과 1·2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과반의 지지를 확보했다. 대세론을 이어가며 본선 직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오는 8일 여덟 명의 주자를 네 명으로 압축하는 2차 예비경선을 치른다. 이어 지역별 토론회를 거쳐 다음 달 5일 전당대회에서 최종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

하지만 대선 판세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을 통해 발표되는 여론조사 지지율을 보면, 여야 유력 주자들이 엎치락뒤치락,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다. 하지만 자고 나면 후보들을 둘러싼 메가톤급 의혹들이 잇따라 터져 나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때 추진된 대장동 개발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임 시절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의혹은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 여야 모두가 의혹의 대상이 되면서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계 제로의 국면이다. 사안의 폭발력이 워낙 커 그 어느 쪽이든 불법이나 비리가 확인되면 치명상을 입게 될 수밖에 없는 구도다.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이 때문에 여야는 상대를 향해 ‘국민의힘 게이트’니 혹은 ‘이재명 게이트’니 하며 프레임을 씌우는 전략으로 사활을 건 공방을 펼치고 있다. 결국 진실은 수사를 통해 밝혀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때까지는 여야 모두에게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 될 전망이다. 흔히 프랑스 사람들은 빛과 어둠이 뒤섞인 황혼 녘, 모호한 경계의 시간을 그렇게 표현한다. 양치기들의 눈에는 저 어스름 속에서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짐승이 나를 반기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는 이 혼돈의 시간이 더욱 혼란스럽다. 해 질 녘은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때이지만 온통 붉을 뿐이어서 선과 악 혹은 적과 아군의 구분이 어렵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허상인지 눈을 의심해야 하는 시간이다. 선거를 ‘개와 늑대들의 시간’이라고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로마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거로 선택받은 민의의 대변자들이 ‘저마다 충견이 되겠다고 약속했지만 훗날 탐욕스러운 늑대였던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개와 늑대들의 정치학’, 함규진 서울교육대 교수)

대선을 앞두고 우리가 처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대유행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지속되는 가운데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늘어만 가고, 총체적인 민생 위기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부동산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소득·자산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확대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정세 등 정치·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불확실성도 증폭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편에서는 기득권 엘리트들이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 부동산 등으로 이권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대장동 개발만 해도 언론인·변호사·회계사 등 화천대유(시행사)의 소수 주주들이 배당금으로만 4000억 원을 챙겼다. 대법관·특별검사·검찰총장·검사장 출신 인사들은 고문단에 이름을 올린 뒤 고액의 자문료를 받았다. 국민의힘을 탈당한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6년가량 근무한 뒤 받은 퇴직금도 무려 50억 원이나 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지자체 공무원 및 국회의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도 엊그제 일어난 일이다.

이런 현실에서 지난해 우리나라 10~30대의 사망 원인을 보면 자살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출산율은 세계에서 맨 꼴찌를 기록했다.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잃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표들이다. 탈출구를 잃은 청년들은 대출까지 받아 부동산, 가상화폐, 주식 등 위험자산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준말)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 사람들이 거액의 상금을 위해 목숨을 건 생존 게임을 벌이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젊은 층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내년 대선은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고, 기득권층의 특혜를 혁파해 공정과 공존을 모색하며,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유능한 정부를 세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방 분권·균형 발전 이끌 수 있어야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과제는 국토 균형 발전의 회복이다. 수도권 집중을 넘어 ‘일극(一極) 포화’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은 단지 지방의 시각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분명 비정상 국가이다. 국토 면적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수도권에 인구의 과반이 몰려 있고 일자리·교육 기반마저 온통 그곳에 쏠려 있는 현실에서 지방은 날로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인 것이다. 집값 폭등이나 청년 실업, 의료 격차, 저출산, 삶의 질 저하 등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도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광주일보가 최근 ‘2022년 대선의 해, 신(新)균형 발전 원년으로’란 심층 보도를 기획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런데도 대권 후보들이 균형 발전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불균형이 더 심화되면 국가의 지속 가능성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을 그들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 때마침 지방자치 부활 30주년과 촛불 항쟁 5주년을 맞았다. 이번 대선에서는 ‘포스트 코로나’의 대전환기를 헤쳐 나갈 미래 비전과 지방 분권 및 균형 발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진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유권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더 이상의 국정 농단을 막기 위해 깨어 있는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검증하고 또 검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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