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 우린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채동주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2년
2021년 07월 20일(화) 05:00
‘코로나 잠잠해지면 보자.’ 어느 날 우리의 일상을 뒤바꾼 기약 없는 약속이 생겨났다. 이처럼 무의미한 약속을 한 지도 벌써 1년 7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거리 두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커피를 만 번씩 저어가며 달고나 커피를 만들기도 하고,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랜선 술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한동안은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팬데믹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폭증하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우리의 희망도 점점 일그러지고 있다.

‘코로나 사피엔스’의 저자 중 한 명인 김경일 교수는 코로나 시대에 사회가 강요한(WANT)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LIKE) 것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상대적인 사회적 틀이나 규정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척도는 무엇인가. 행복의 척도를 오직 ‘나’라고 말한다면, 이건 또 다른 모순이다. 내가 아닌 타인에서 오는 진정한 행복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단지 사회가 강요한 것이라고 용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1년이 넘도록 언택트(Untact)를 유지해 온 인류의 모습이 어떤가? 그들의 일상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국민들의 우울, 불안으로 인해 국가는 상담센터를 만들었고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는 코로나 블루 치료를 위한 디지털 플랫폼 개발에 신경을 쏟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은 행복의 척도가 변화되는 양상을 보여 준다.

누군가가 말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막상 팬데믹이 들이닥치고 나니 철저하게 고립된 사람들은 다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문밖으로 나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또 반대로 언택트 시대에 완벽히 적응해버린 사람들도 있다. 특히 재택근무나 비대면 수업은 시간과 장소 제약이 없다는 아주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만약 영원히 자신의 동료와 친구들의 얼굴을 대면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사실 이건 만약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전염병의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고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세상은 코로나 이후의 세대에게 거리 두기를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원시부터 공동체 생활에 특성화되어 있는 인간이 언택트 시대를 얼마나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까?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 두기는 피할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유로운 만남을 원한다. 천 조각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하나가 되는 기적을 원한다.

팬데믹으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하는 지름길이 있다. 자연친화적인 삶, 우리는 미니멀리즘에 만족을 느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한 인류의 마비는 자연에게 기회였다. 공장을 멈추고 도로에 자동차가 줄며 잠깐이지만 회복을 했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폐기물이 증가하며 다시 지구는 멈췄다. 폭염이 지속되고, 에어컨을 틀고, 다음 해가 되면 더욱 심각해지고. 모두 지구 종말의 사이클을 돌리는 일이다. 또한 빙하 속에는 고대 바이러스가 묻혀 있는데 온난화가 가속화된다면 이의 창궐 또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사상 초유의 전염병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우리는 인류의 혁신이 인류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아야 한다.

코로나 종말 이후에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규정할 순 없다. 우리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또다시 극복할 것이다. 혁신이 아닌 자연친화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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