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이유
2021년 04월 15일(목) 06:00
영화 ‘달콤한 인생’(2005년)에서 백 사장 역으로 나온 황정민의 대사가 요즘 들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도망쳤던 김선우(이병헌)가 제 발로 찾아왔을 때 백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렇게 된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 엉뚱하게 자꾸 딴 데서 찾는 거지?” 이는 선우가 궁지에 몰리게 된 이유를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1990년대에는 사람들이 ‘내 탓이오’ 스티커를 자신의 차량 앞 유리에 붙이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시작한 이 캠페인은 가톨릭 교계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이는 ‘고백의 기도’를 드릴 때 가슴을 세 번 치면서 ‘내 탓이오’를 외치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마태복음 7장 3절 “너는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면서 어찌 제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예수의 말처럼 남의 잘못만을 비난하는 분위기를 반성하자는 의미였다.

영국의 철학자인 제임스 알렌의 ‘나를 바꾸면 모든 것이 변한다’라는 책은 국경·세대·지위를 초월해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자기계발의 교과서라 불리는 이 책에서 알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창조하는 것이 인간이며, 미래를 결정하는 모든 조건이 자신 안에 있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 배우고 지혜를 쌓아 나감으로써 자신의 의지력으로 운명을 극복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를 자기 자신에서만 찾기에는 여러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 법·제도와 함께 정치·경제·행정 등에 있어서의 정책, 사업, 지침, 규제 등으로 피해를 입거나 개인적인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을 경우 사회 전반의 개혁과 혁신에 무관심해지는 폐단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요즘 들어 남을 ‘탓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 ‘이렇게 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싶은 심리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안에서부터의 변화를 시작해 밖으로 이어 가는 지혜로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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