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의 언어
2021년 03월 29일(월) 05:00
아카데미상 여섯 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미나리’가 연일 화제다. 어제 누적 관객 수 80만 명을 넘어서면서, 올해 첫 한국영화 100만 관객 돌파도 예상된다. 할머니 역을 맡은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당초엔 ‘미국 이민 이야기’라는 제한적인 소재 때문에 국내 관객들의 공감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미국 엔터테인먼트사가 제작한 미국 영화인 데다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선입견도 있었다. 한데도 보란 듯이 흥행가도를 치닫고 있다. 한국 영화가 아니면서도 한국 영화인 ‘미나리’의 흥행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삶의 터전을 옮긴 이민자들의 모습이 비단 특정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뿌리내리지 못하는 삶’을 껴안는 ‘마음의 언어’를 이야기한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기억과 경험은 결국 공감의 언어로 수렴된다. 그는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당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미나리는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고, 그 가족은 그들만의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미국의 언어나 외국어보다 심오하다. 그것은 마음의 언어이며 나도 그것을 배우고 물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음의 언어’는 사실을 뛰어넘는 진정성을 담고 있다. 아웃사이더의 삶을 견뎌야 하는 이들의 고통을 감싸 안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진심이 담긴 한마디 말이다. 영화에서 윤여정은 시종일관 할머니 특유의 언어로 마음을 담아 말한다. 특히 그녀가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손자에게 설명하는 대목은 깊은 여운을 준다. “미나리는 잡초처럼 아무데서나 막 자라니까 누구든지 다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뽑아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코로나로 많은 이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일상이 막막하다 못해 더러는 뿌리째 뽑히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마음의 언어는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다독여 준다. 마치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도 그 어디에서나 뿌리를 내리는 미나리처럼. 그것은 해독과 정화의 다른 이름이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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