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만 잘하면 됐지 무슨 소리냐고?
2021년 01월 20일(수) 07:00

윤영기 체육부장

“아이들이 양궁 스타 기보배나 이승윤 선수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지 않을까요.” 며칠 전 만난 광주시 양궁협회 김성은 전무는 들뜬 표정으로 올해 목표를 귀띔했다. 우선 “현역 선수나 지도자들과 함께 광주시 남구 지역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운동하느라고 바쁜 선수들이 과연 재능 기부에 나설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는 다짐하듯 단호하게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국제양궁장을 보유하고 있는 광주인 만큼 광주양궁협회가 시민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광주시양궁협회와 남구청이 공동 추진하는 이 사업은 이른바 소외계층 어린이들에게 양궁의 재미를 맛보게 해 주는 체험 행사이자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참여하는 재능 기부 프로그램이다. 이미 지난해 말 광주 국제양궁장이 있는 남구 지역 아동센터 49곳과 체험 교육 협의를 마쳤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수그러들면 양궁 장비를 들고 이들을 찾아갈 계획인데, 어린이들이 생활하는 복지관도 방문한다.



스포츠의 공적 역할 고민할 때다



뭐 특별할 것도 없는 재능 기부 사업을 그리 장황하게 설명하느냐고 고개를 갸웃하는 이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광주시 양궁협회가 추진하는 양궁 재능 기부 사업은 연중행사로 매주 3회가량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니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어느 경기단체든 으레 진행하는 일회성 사업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 사업이 달리 보이는 것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장기 프로그램을 끌고 가려면 소명 의식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통틀어 봐도 이처럼 재능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기단체는 없다. 더구나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 체육지도자 16명과 주요 선수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오로지 성적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훈련 시간은 금쪽과도 같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기꺼이 아이들을 만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들이 ‘쪼갠 훈련 시간’은 한 어린이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세계 골프 무대를 주름잡는 박세리 키즈처럼 기보배나 최미선의 뒤를 잇는 선수가 나올지도 모른다. 굳이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청소년들은 양궁을 체험해 봤다는 추억 하나는 갖게 될 것이다.

유석우 광주시 핸드볼협회장은 학생 동호인 대회를 위해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지난 2017년 취임 이래 협회장기 핸드볼 학교스포츠클럽 대회를 매년 열고 있다. 학교스포츠클럽은 방과 후에 학생들이 좋아하거나 관심을 갖는 스포츠 종목에 참여하는 학내 스포츠 동아리다. 전문 체육인 양성이 목표인 학교 운동부와는 다르다. 보람을 찾으려면 핸드볼 팀을 운영하는 학교를 도우면 생색도 나고 좋으련만, 유 회장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생순’ 이후 관심 밖으로 밀려나 도로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한 핸드볼 저변을 확대해야겠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재능 기부 나선 양궁협회의 경우



그러한 철학 때문인지 그의 노력은 작은 결실을 거두고 있다. 학교스포츠 클럽에서 운동한 초등학교 선수들이 본격적인 운동을 위해 핸드볼 팀이 있는 상급 학교로 진학했다니 말이다. 감독이 순발력 있는 학생을 뽑아 운동부에 밀어 넣고 선수로 키워 내는 시스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토양에서 출발한 학교 스포츠클럽 출신 선수들은 분명 다른 길을 갈 것이다.

오늘 광주 양궁협회와 핸드볼협회의 사례를 들어 글을 쓰는 것은 광주·전남에 스포츠 선순환 구조가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종목을 스스로 선택해 참여함으로써 해당 종목의 팬이 되는 스포츠 생태계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좋아서 하는 스포츠는 ‘평생 운동’이 될 것이며, 삶의 질을 바꿔 놓기도 할 것이다. 체육단체로서도 학생들에게 체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또 다른 존재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는 셈이 되니 일석이조다.

광주·전남 지역에는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직장운동 경기부가 44곳이 있다. 광주에 10곳 전남에 34곳이 있는데, 여기에 속한 선수들은 사실상 준공무원 신분으로 생계를 보장받고 운동한다. 이들에게 주어진 지상 과제는 소속 자치단체와 지역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최고 성적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고 만다면 그냥 직장인 운동선수일 뿐이다. 이들이 한 발 더 나아가 자신들의 재능을 조금이나마 청소년과 지역민들에게 기부하면 어떨까. 운동만 잘하면 됐지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팀에는 열성 팬이 없는지 생각해 봤느냐”고 묻고 싶다. 생각의 차이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penfoot@kwangju.co.kr

실시간 핫이슈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