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 원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2020년 06월 25일(목) 00:00 가가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올해는 에이시(AC: After Corona) 원년(元年)이다. 이제 다시는 비시(BC: Before Corona)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과연 그렇다.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상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바뀌는 일상은 일상대로 그때그때 적응해 나가면 될 테니까. 문제는 코로나19가 몰고 오는 어두운 경제의 먹구름이다. 우리는 이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돈을 ‘땀과 눈물의 종잇조각’이라고 불렀다. 한 끼 식사를 위해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던 어린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녀의 표정은 언제나 밝았고 생각은 늘 긍정적이었다. 정치 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남편이 39세 되던 해, 갑자기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됐을 때도 그랬다. 남편은 절망에 빠졌다. 비가 그치고 맑게 갠 어느 날, 휠체어를 밀고 정원으로 나간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비가 온 뒤에는 반드시 이렇게 맑은 날이 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남편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나는 영원한 불구자요. 그래도 나를 사랑한단 말이오?” “아니 여보. 그럼 제가 지금까지 당신의 두 다리만을 사랑했나요?”
아내의 재치 있는 말에 남편은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훗날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 된다. 경제 대공황으로 절망에 빠진 미국을 구출해 낸 것도 그다.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엘리너 루스벨트의 이야기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뉴욕 대부호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버드대학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한 후 변호사가 된다. 1920년 대통령 후보가 됐지만 패했고, 다시 변호사 업무로 돌아갔다. 이후 끊임없이 정치 재기를 노렸으나 39살의 나이에 반신불수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은 루스벨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더불어 타인과 소통하며 세상의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철학을 확고히 하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가을의 일이다. 뉴욕의 주식시장이 갑자기 곤두박질쳤다. 부동산 가격도 추락했다.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절반 이상 문을 닫았다. 공장들도 생산라인을 멈췄다. 16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채 거리로 내몰렸다. 최악의 경제 위기로 온 나라가 절망과 불안, 패배의식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미국을 구한 루스벨트
이때 루스벨트는 말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희망과 용기를 갖자고 국민을 설득한다. 12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웃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깃든 무거움과 불안함을 걷어 낸 그는 결국 ‘뉴딜정책’으로 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비로소 ‘정부가 자신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막연한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김형곤의 책 ‘소통의 힘’ 참조)
미국은 훌륭한 대통령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행운의 나라다. 1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머스 제퍼슨,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 그에 비하면 우리는 존경할 만한 대통령 한 명 찾아보기 힘든 불행한 나라라 하겠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배출한 대통령은 모두 12명이다. 이중 전직 대통령 11명은 모두 끝이 좋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란 자리는 ‘독(毒)이 든 성배(聖杯)’와 다르지 않았다. 명예와 보상이 따르지만 실패와 파멸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은 자리였으므로.
짧은 임기의 윤보선과 ‘꼭두각시 대통령’ 최규하는 논외로 하자. 이승만은 학생들의 유혈 시위 끝에 외국으로 망명해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박정희는 18년 장기 독재 끝에 부하에게 사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광주학살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노태우는 퇴임 후 재판에서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김영삼은 임기 말에 찾아온 IMF 외환위기로 불명예 퇴임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차남 김현철이 구속되는 등 끝이 그리 좋지 못했다.
노무현은 퇴임 후 자신에 대한 수사와 관련,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명박 역시 퇴임 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 박근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된 뒤 감옥에 갇혔다. 그나마 비교적 성공한 대통령으로 김대중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 역시 ‘홍삼 트리오’로 불렸던 자식들 문제로 말년에 크게 체면을 구겼다.
이제 남은 이는 2022년 5월 9일이면 임기를 마치게 되는 현직 문재인 대통령뿐이다. 앞으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쯤이면 레임덕에 빠질 만도 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거꾸로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판 뉴딜은 있는가
사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어김없이 ‘전고후저’(前高後低) 현상을 보였다. 취임 초에는 높지만 임기 말이 되면 급격히 낮아지는 것이다. 초기엔 50% 이상을 자랑했던 지지율이 말년엔 10% 이하로 곤두박질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5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다분히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K-방역’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며, 지지율 또한 언제든지 요동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높은 지지율에 만족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한 대비의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 거안사위(居安思危)라 했다. 평안(平安)할수록 위험(危險)이 닥칠 때를 생각해야 한다. 전전긍긍(戰戰兢兢)-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하며 삼가고 또 삼가야 한다. (이 말은 본디 ‘얇은 얼음판을 밟듯 조심하라’는 뜻이었으나 요즘은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인다.)
문재인 정부 앞에 놓인 길은 산 너머 산,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남북 관계는 파탄 직전이다. 북한 ‘최고존엄’의 여동생 김여정은 최근 문 대통령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조롱과 욕설을 퍼부었다. 미·중·일 등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 상황 역시 조만간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이로 인해 악화된 경제는 전혀 좋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막막한 상황이다. 따라서 그저 그런 정책을 모아 놓은 게 아닌, 정말로 획기적인 ‘한국판 뉴딜정책’이 절실하다. 그리하여 루스벨트가 그랬던 것처럼 문 대통령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살려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했던 역사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주필
프랭클린 루스벨트. 뉴욕 대부호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버드대학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한 후 변호사가 된다. 1920년 대통령 후보가 됐지만 패했고, 다시 변호사 업무로 돌아갔다. 이후 끊임없이 정치 재기를 노렸으나 39살의 나이에 반신불수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은 루스벨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더불어 타인과 소통하며 세상의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철학을 확고히 하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가을의 일이다. 뉴욕의 주식시장이 갑자기 곤두박질쳤다. 부동산 가격도 추락했다.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절반 이상 문을 닫았다. 공장들도 생산라인을 멈췄다. 16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채 거리로 내몰렸다. 최악의 경제 위기로 온 나라가 절망과 불안, 패배의식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미국을 구한 루스벨트
이때 루스벨트는 말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희망과 용기를 갖자고 국민을 설득한다. 12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웃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깃든 무거움과 불안함을 걷어 낸 그는 결국 ‘뉴딜정책’으로 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비로소 ‘정부가 자신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막연한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김형곤의 책 ‘소통의 힘’ 참조)
미국은 훌륭한 대통령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행운의 나라다. 1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머스 제퍼슨,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 그에 비하면 우리는 존경할 만한 대통령 한 명 찾아보기 힘든 불행한 나라라 하겠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배출한 대통령은 모두 12명이다. 이중 전직 대통령 11명은 모두 끝이 좋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란 자리는 ‘독(毒)이 든 성배(聖杯)’와 다르지 않았다. 명예와 보상이 따르지만 실패와 파멸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은 자리였으므로.
짧은 임기의 윤보선과 ‘꼭두각시 대통령’ 최규하는 논외로 하자. 이승만은 학생들의 유혈 시위 끝에 외국으로 망명해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박정희는 18년 장기 독재 끝에 부하에게 사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광주학살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노태우는 퇴임 후 재판에서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김영삼은 임기 말에 찾아온 IMF 외환위기로 불명예 퇴임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차남 김현철이 구속되는 등 끝이 그리 좋지 못했다.
노무현은 퇴임 후 자신에 대한 수사와 관련,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명박 역시 퇴임 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 박근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된 뒤 감옥에 갇혔다. 그나마 비교적 성공한 대통령으로 김대중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 역시 ‘홍삼 트리오’로 불렸던 자식들 문제로 말년에 크게 체면을 구겼다.
이제 남은 이는 2022년 5월 9일이면 임기를 마치게 되는 현직 문재인 대통령뿐이다. 앞으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쯤이면 레임덕에 빠질 만도 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거꾸로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판 뉴딜은 있는가
사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어김없이 ‘전고후저’(前高後低) 현상을 보였다. 취임 초에는 높지만 임기 말이 되면 급격히 낮아지는 것이다. 초기엔 50% 이상을 자랑했던 지지율이 말년엔 10% 이하로 곤두박질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5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다분히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K-방역’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며, 지지율 또한 언제든지 요동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높은 지지율에 만족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한 대비의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 거안사위(居安思危)라 했다. 평안(平安)할수록 위험(危險)이 닥칠 때를 생각해야 한다. 전전긍긍(戰戰兢兢)-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하며 삼가고 또 삼가야 한다. (이 말은 본디 ‘얇은 얼음판을 밟듯 조심하라’는 뜻이었으나 요즘은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인다.)
문재인 정부 앞에 놓인 길은 산 너머 산,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남북 관계는 파탄 직전이다. 북한 ‘최고존엄’의 여동생 김여정은 최근 문 대통령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조롱과 욕설을 퍼부었다. 미·중·일 등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 상황 역시 조만간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이로 인해 악화된 경제는 전혀 좋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막막한 상황이다. 따라서 그저 그런 정책을 모아 놓은 게 아닌, 정말로 획기적인 ‘한국판 뉴딜정책’이 절실하다. 그리하여 루스벨트가 그랬던 것처럼 문 대통령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살려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했던 역사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