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작가' 문봉선 초대전…4월 30일까지 무각사 갤러리
문봉선 작가 ‘달빛 아래 매화 향기’전
“매화그림 30년…매년 새롭게 보고 그립니다”
무각사 대명매·홍매 등 40여점 전시
김훈 ‘남한산성’100쇄 기념 삽화 그려
2020년 02월 20일(목) 00:00

'월매도 (月梅圖)'

도심 절집에서 매화를 본다. 지난 주,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무각사에서다. 절집 이곳 저곳에 심어진 매화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로터스 갤러리엔 은은한 달빛과, 푸른 대나무와 짝을 이룬 그윽한 매화 나무가 가득했다. 담백하고 고즈넉한 수묵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소영암향(疎影暗香)-달빛 아래 매화 향기’(4월30일까지) 를 주제로 전시회를 갖고 있는 문봉선(61) 작가와 함께 전시회를 둘러봤다.

문봉선 작가
제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문 작가가 무각사에서 전시회를 열게 된 건 청학스님과의 8년여에 걸친 인연 덕이었다. 어느날 TV에서 문 작가의 작품을 본 청학스님은 “화면에 등장한 난초 그림이 너무 좋아서 기회가 되면 무각사에 한번 와 주십사” 청했다. 항주에 머물며 작업하던 그는 이후 무각사를 방문했고, 스님과의 교우가 시작됐다. 스님은 문 작가가에 ‘무여(無如)’라는 호를 지어주었고, 2014년 로터스갤러리에서 개인전 ‘세한삼우(歲寒三友)’도 가졌다. 이번 전시는 “온전히 매화만으로 전시회를 열어보면 어떻겠냐”는 스님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양춘 (陽春)’
이번 전시에서는 무각사의 대명매, 백매, 홍매, 청매 등을 비롯해 선암사 등 남도의 매화나무를 그린 작품 40여점이 전시중이다. 문 작가가 30년간 천착해온 매화의 결정판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지하 1층 갤러리에 들어서면 수많은 매화 작품들과 더불어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 초록 이끼, 그 위로 놓인 작은 디딤돌이 어우러진 바깥 풍경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절 내의 나무 한그루, 돌멩이 등 무엇 하나 허투루 놓지 않은 청학 스님이 조성한 공간과 작품은 안성맞춤이다. 문 작가는 개막식에 참여했던 서울 지인들도 전시장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전했다.

문 작가는 매화가 필 즈음이면 청학스님의 전화를 받고 1박2일, 2박 3일씩 무각사에 머물며 마음의 위로를 받고, 화첩에 매화와 달빛 등을 스케치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에게 절집의 매화는 늘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산야에 피어 있는 매화와 달리 절집의 매화는 고고하고, 숭고하고, 고결하죠. 그 나무를 처음 심은 스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그 깨우침의 여정은 얼마나 지난했을까 생각하게 되죠. 매화는 ‘구도의, 기다림의 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노매(老梅)’는 길이 6.8m 대작이다. 호남 5대 매화 가운데 하나로 현재 무각사 사랑채 앞에 심어진 ‘대명매’에 영감을 받아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해 그린 작품이다. 무각사 범종 앞에 꽃을 피운 매화 나무의 모습이나 주지 스님 방 앞의 매화나무에 앉은 동박새의 자태를 그린 작품도 눈길을 끈다. 달빛과 어우러진 문 작가의 매화 작품들은 무엇보다 비워지고, 남겨진 여백의 미가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몇년전부터 시서화가 조화를 이룬 매화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한 문 작가는 이황의 ‘매화시첩’과 조선시대 매화시에서 빌어온 글들을 그림과 함께 표현했다.

“매화는 수형과 껍질이 아주 특이해요. 만고풍상을 겪어내는 굳건한 소나무와는 또 다른 느낌이죠. 어떨 때는 폭풍에 부러지고, 깨져버리기도 하지만 또 다시 봄의 기운을 타고 순을 피우고 새 생명을 터트리죠. 매화가 한송이만 피어도 봄은 오는 거죠.”

그의 매화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꽃잎의 앞면과 함께 ‘뒷면’을 그린 게 많다. 겸손함을 전하듯 소박하게 고개를 숙인 매화의 뒷모습에서 작가는 삶의 이치를 본다. 그 역시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한 것으로 농부들에게서 깨달음을 얻고, 30년 관찰력의 결과다. 최근에는 꽃과 더불어 생명력을 보여주는 가느다란 푸른 줄기를 화면에 함께 배치한다.

“제 주 전공이 수묵화예요. 섬진강에 자주 다니러 가곤 했는데 서른 살 즈음 처음 매화를 발견하고 나서는 매력에 빠져들었죠. 매화 그림을 그린 게 30년이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자기 습관에 젖어버리는 게 인간인데 전 매년 새롭게 매화를 보고, 새로 시도하려합니다.”

전국의 매화 나무를 찾아나서고 일본, 중국도 가보았지만 ‘남도 매화’의 매력은 그 어느 것도 따라올 수가 없었다.

“ 제일 먼저 봄이 온다는 중국 남경의 매화는 잔디처럼 파릇파릇한 배경속에 피어나 영 매력이 없어요. 반면 남도의 매화는 청순하고 순결한 자태를 지닙니다. 떡갈나무 등 낙엽송과 어우러지고, 절집의 회갈색 지붕과 어우러져 기품을 더하죠.”

‘매초명월(梅梢明月)’
그의 작품은 여느 한국화보다 톤 다운된 느낌이 들어 은은한 매력을 풍긴다. 그는 닥종이로 만든 한지를 다시 먹물로 염색해 사용하고 아사천 등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캔버스로 사용한다.

매화 작업 과정과 작품 이야기, 생각 등을 들을 수 있는 영상물에서는 손으로 매화꽃잎을 그리고 이쑤시개를 이용해 마무리를 하는 장면 등 흥미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전시에서 만나는 금강경 사경(寫經)은 건립중인 무각사 법당에 자리할 부처님 복장안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이번 전시를 기념해 열화당에서 문봉선 서화첩 ‘梅’도 함께 출간됐다.

문 작가는 지난 2017년 발간된 김훈의 ‘남한산성’(학고재 간) 100쇄 기념판에도 참여했다. “수묵화의 미명, 여명같은 느낌으로 삽화를 그려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현지 답사를 통해 27점의 작품을 그렸고, 책에 실린 작품은 이후 영화로 제작된 ‘남한산성’에도 영감을 줬다.

홍익대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문 작가는 중국 남경예술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중앙미술대전 대상,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선미술상 등 굴지의 상을 수상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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