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의자, 지친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유의 공간
2020년 02월 20일(목) 00:00

오견규 작 ‘비움’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가?/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의자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있는 일/바닥이 신발 바닥을/혹은 발가락들을 받아들이는 일…”<팻 슈나이더 작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중에서>

하도 세상이 시끄럽고 시절이 뒤숭숭하여 일상의 평범함에 새삼 안도감을 갖게 되는 요즘이다. 늘 옆에 있어주는 좋은 사람들과 사물의 한결같음에도 위로와 힘을 얻게 된다.

우리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사물은 무엇일까? 무거운 나의 육신을 지탱해주는 의자의 인내심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의자가 없었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불편하고 옹색했을까? 인간의 직립과 더불어 의자 생활은 눈부신 문명사회를 이룩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공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고흐, 고갱은 물론 일찍이 많은 예술가들은 의자를 주목해 미술작품으로서 나름의 사연을 담아 형상화했는가 하면 조셉 코수스 같은 개념미술가도 실제 의자, 의자를 찍은 사진, 의자의 사전적 정의를 담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인지와 사고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화가 목운 오견규(1947~ )의 작품 ‘비움’(2019년 작)은 보는 순간 누구라도 그 의자에 앉아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어지게 한다. 소박하고 투박한 빈 의자여서인지 지친 우리 삶을 쉬도록 편안하게 한 자리 내어줄 것 같은 마음이 느껴진다.

작가는 “법정스님이 살아생전 송광사 불일암에 기거하실 때 앉으시곤 했던 의자가 모델”이라면서 “몇 년 전 후박나무 아래 의자를 보았을 때 법정스님뿐 아니라 구름도 잠깐 쉬었다 가고, 새도 안개도 나그네도 머물다 가곤 하는 사유의 공간으로 마음에 와 닿아 그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광주시립미술관 학예관·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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