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자 이동정보 비공개가 능사인가
2020년 02월 06일(목) 00:00
박 진 표 정치부 차장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난 4일 지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첫 발생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불안이 없도록 정보가 파악되면 즉시 공개토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광주시는 이날 오후 3시께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 지침에 따라 일절 말할 수 없게 됐다고 말을 바꿨다. 이유는 “시민 혼란이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날 낮 12시께부터 광주 광산구청에서 내부 보고용으로 만든 문건이 카카오톡 등 SNS를 타고 번졌다. 확진자 자녀들의 학교까지 모두 담겨 있었지만, 광주시나 질본은 해당 내용이 맞는지 조차도 확인해 주지 않았다.

이날 하루 종일 맘카페와 SNS 등엔 ‘확진자가 모 대형마트에 근무한다’, ‘어디를 오고 갔다’, ‘모 대형 마트가 폐쇄됐다’는 등 각종 ‘가짜뉴스’가 난무했다.

질본과 광주시에서 ‘시민 혼란’을 걱정(?)해 정보를 통제한 사이, 시민들은 ‘가짜뉴스’를 ‘진짜뉴스’로 믿을 수 밖에 없었고 막연한 불안감은 공포라는 괴물로 변질됐다.

광주시는 이날 이 같은 시민의 고통은 뒷전인 채 내일(5일) 오후면 질본에서 구체적 동선을 파악해 공개할 것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러나 5일 오전에 확진자의 20대 딸까지 추가 확진자로 밝혀지면서 혼란은 더 커졌다. 이날 오후 28시간여만에 질본에서 발표한 확진자의 동선도 전날 유출된 광산구 내부보고 문건 내용을 넘지 못했다.

이용섭 시장도 답답했던지 이날 오전 담당 간부에게 “시민이 불안해 하면 안된다. 알려드릴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알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정부 지침 이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되돌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조적으로 이날 확진자가 발생한 경기도 구리시에선 안승남 구리시장이 직접 나서 확진자 동선을 모두 공개했다. 1월 24일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당일부터 동선이 시간과 함께 업소명까지 모두 담겨 있었다. 구리시장은 광주시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질본의 지침까지 어기고, 시민의 알권리를 선택한 것이다.

질본은 앞으로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더라도 자체 지침을 이유로 동선공개 등을 통제할 가능성이 높다. 그 사이 광주시민은 또 가짜뉴스와 막연한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다. 바이러스는 예방이 우선이라는 데 이견을 제기하는 이는 없다. 확진자의 동선이 자세히 공개된다면 광주시민은 그 장소를 아예 피하거나 미리 대비할 수 있다. 막연한 공포도 어느 정도 사라질 것이다.

광주시의 한 보건 관련 공무원도 “우리도 시민에게 감염정보를 1초라도 빨리 공개하는데 동의하지만, 공무원이 징계 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질본지침을 어길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200여년 전에도 이 같은 공개는 시대적 화두였던 모양이다. 독일 철학자 칸트(1724~1804)는 “공개한 만큼 공정성과 공공성은 커지기 마련이다”며 (정보)공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진표 기자/lucky@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