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단상
2019년 11월 25일(월) 04:50
단식은 기독교 역사에도 등장한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시나이산에서 40일간 금식을 했고,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받은 후 공생애에 들어가기 전 40일 동안 단식을 했다. 특히 예수님은 금식을 하는 동안 수차례 마귀들의 유혹을 받는데, 그것은 신앙을 포기하는 대가로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다 차원 높은 가치를 위해 결코 속세의 유혹과 욕심에 휩쓸리지 않았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뉘우치는 회개의 의미로 단식을 했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서는 교회의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 금식을 했다. 기독교의 단식은 식욕이라는 욕망을 끊고 하나님께 집중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음식을 금하는 게 아닌, 온전히 나를 내려놓고 절대자의 뜻에 순종한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생뚱맞은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사법연수원 시절 신학대학을 다녀 전도사 자격을 취득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죽기를 각오하고 결행한다는 단식의 목적은 공수처 설치 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 등에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황 대표의 단식은 명분이 없으며 국민의 비판과 외면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황 대표가 단식에 앞서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 중인 전광훈 목사를 찾아갔다는 사실이다. 전 목사는 평소 상식 이하의 발언과 잇단 정치적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인물이다. 집회 중 헌금 강요와 문 대통령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기도 했다. 소속 교단으로부터도 제명될 만큼 신망을 잃은 사람이다. 그런 전 목사를 찾아가 함께 만세를 부른 황 전도사의 모습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지난 2015년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목숨을 건 단식을 결행했다. 방인성 목사 또한 특별법 제정을 주장하며 동참했다. 어찌 이들에 비할까마는, 황 대표 아니 황 전도사의 단식 역시 세월호 희생자 등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해야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 그에 앞서 먼저 자신의 허물을 보고 회개해야겠지만…. / 박성천 문화부 부장sky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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