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광주지방조달청장] 우리 기업 첫 번째 구매자(First Buyer) 되기
2019년 10월 09일(수) 04:50
영산강을 품은 들판이 검푸르게 짙어 가던 지난 6월 말 광주에 부임했는데 어느새 100일이 다 돼 간다. 그새 들판은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결실의 계절이 다가온다.

정부 광주지방합동청사가 있는 첨단지구에서 영산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무등산에서 달려온 광주천을 만나게 되고, 좀 더 내려가면 화순 어느 골짜기에서 발원했을 지석천을 만나게 된다. 누군가 말했다. 어릴 적 배웠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로 시작하는 동요의 무대가 지석천 드들강 어디쯤이라고. 한숨 돌리며 뒤를 돌아보면 무등산은 여전히 거기 서 있다.

필자에게 보이는 무등산과 전남의 산하는 거칠지 않다. 완만하고 부드럽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담양, 장성, 나주, 무안, 영광, 목포, 광양, 고흥…. 어딜 가나 자연은 푸근하고 어느 허름한 식당의 문을 밀치고 들어가도 실패한 적이 없다.

아름다운 자연만이 아니다. 요즘 광주·전남 지역에는 미래 첨단산업의 고동이 요란하다. 광주광역시는 ‘4차 산업 혁명 선도 도시’를 목표로 인공지능(AI), 신재생 에너지, 친환경 공기산업 육성 등에 팔을 걷어 부쳤고, 며칠 전에는 자동차산업에서 모두가 염원하던 ‘광주형 일자리’를 출범시켰다. 전라남도도 지난 7월 ‘블루 이코노미(Blue Economy)’ 비전을 선포했다. 전남을 ‘글로벌 에너지 신산업(Blue Energy) 수도, 신성장 관광 벨트(Blue Tour), 바이오 메디컬 허브(Blue Bio)’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우리 지역 이곳저곳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과 솔루션을 개발한 기업들이 일어나고, 젊은 창업가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대담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러나 그들 앞에 펼쳐질 여건은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건너려는 자의 20~30%만이 살아남는다’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그들을 기다린다.

기업은 판매가 일어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첨단 분야에서 세상에 새롭게 내놓은 신제품, 청년 창업가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 제품은 초기 시장을 뚫기가 더 어렵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꺼린다. 아무리 좋은 제품도 판매되지 않으면 머지않아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조달청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올해 조달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동안에는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 위주의 소극적 구매자였다면, 이제는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신제품을 선제적으로 구매해주는 적극적 구매자(First Buyer)가 되기로 했다. 그동안 창업·벤처 기업들이 만든 신제품은 공공기관 쇼핑몰인 ‘나라장터’에서 판매하기 어려웠는데, 전용 쇼핑몰인 ‘벤처나라’를 새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아직 기술개발 단계에 있는 혁신 제품을 조달청에서 자체 예산으로 시범 구매해서 공공기관이 사용해 보게 한 후에 성능과 품질이 인정될 경우 공공 판로를 지원하는 ‘혁신 시제품 시범 구매 사업’도 도입했다.

광주지방조달청에서도 이달부터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지역이노비즈협회, 지역벤처협회 등과 손잡고, 금년 말까지 광주·전남 지역의 신제품·우수 기술 개발 제품을 대대적으로 발굴하기로 했다. 이렇게 발굴한 제품들은 대부분 특허나 기술 인증 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구매하는데 별다른 제도적인 걸림돌도 없다.

그런데 이런 노력들도 국가, 지자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들이 적극적으로 구매해 주지 않는다면 결실을 맺기 쉽지 않다. 특히, 여러 기관장들의 관심이 성과를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무원들 사이에 ‘공문 열 번 보내는 것보다 기관장의 한 마디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혁신적인 기술개발 제품의 첫 번째 구매자가 되는 것’은 실무자가 기안해서 올리는 방식(Bottom-up)보다는 기관장이 먼저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공공기관이 구매해 준 단 한 건의 판매 선례가 절실합니다. 공공기관이 구매해준 공신력을 무기로 해외 시장도 도전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필자가 창업·벤처 기업 전용 쇼핑몰인 ‘벤처나라’ 구축에 실무 과장으로 참여했을 때 어느 기업인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구매자가 줄을 이으면서 기술 개발에 여념이 없는 기업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머지않아 결실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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