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행기 편집부국장·정치부장] 지역 이해관계에 방치된 국익
2019년 10월 09일(수) 04:50
우리나라는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선출된 시장과 도지사 그리고 국회의원은 지역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중앙정부는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각 지역의 이해 충돌과 갈등을 중재·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된 국가 운영 시스템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지역 주민을 위해 일해야 할 단체장과 국회의원은 물론, 서로 다른 지역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할 정부도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호남권에 들어서는 두 개의 국제공항을 둘러싼 우려, 그리고 나주 한전공대 설립 반대 움직임 등에 대한 지자체와 정부, 정치권의 무관심·무책임·무대응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랜 세월 형제처럼 지내 온 광주·전남과 전북은 국제공항 활성화를 놓고 조만간 각 지역의 명운을 건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올 들어 전북에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전북 지역민의 숙원 사업인 국제공항 건설은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에 포함됐고, 오는 2020년 정부 예산안에 ‘신설 사업’으로 분류돼 40억 원의 설계비가 책정됐다. 일단 국가 정책이 결정되고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새만금 국제공항 완공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전북 지역민이 ‘국제공항 건설’이라는 숙원을 풀게 됐다는 점은 같은 호남인으로서 당연히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동차로 1시간40분 거리에 있어 항공 수요가 상당 부분 겹칠 수밖에 없는 무안국제공항과 새만금국제공항 간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광주·전남과 전북이 지역 공항 활성화를 위해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만큼, 수요가 제한된 국토 서남권 공항 두 곳이 함께 부실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무안국제공항의 경우 광주송정~목포를 연결하는 호남고속철 2단계 구간이 무안국제공항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확정되면서 대규모 사업비 투입이 예정되어 있다. 또 광주공항의 기능을 무안공항으로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공항운영이 부실해질 경우 자칫 막대한 매몰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회나 자치단체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이 같은 문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나 대책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인 데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현실 인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전공대 문제는 지자체와 정치권이 ‘서로 모른 체하는’ 국제공항 건설과는 달리 타 지역 지자체와 정치권의 강력한 견제와 반발이 이어지는 등 분위기가 전혀 딴판이다. 실제로 자유한국당은 ‘한국전력 공사법 일부개정 법률안’과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한전공대 설립을 가로막으려 하고 있으며, 타 지역 일부 지자체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광주·전남 지자체와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거나 한전공대 설립의 당위성을 적극 홍보하고 나서기보다는 ‘말썽을 만들 필요가 없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대통령 공약사업인 데다 대학 부지까지 마련되고, 학교법인도 설립된 마당에 조용히 사업을 진행해 가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외부 반발이 거세진 최근에야 광주·전남범시도민지원위원회와 지역내 5개 상공회의소가 ‘한전공대 설립은 국가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부와 지역 정치권이 분명한 대응에 나서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나선 정도다.

정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활동이다. 정부나 정치권이 서로 다른 지역의 이해관계를 조정·중재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게 되면 그 폐해는 결국 국민이 안게 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지역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대규모 국가정책을 기획·추진할 때는 사전 조율을 거쳐 모든 과정이 공개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

/redplan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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