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부터 독립운동까지…구국 살신성인 ‘의향 보성’
박광전·안규홍·최대성 등
‘보성 의병사’ 발간 777명 위인 발굴
이순신·김구·서재필·나철 선생 등
애국지사들과의 인연도 각별
호남서 가장 먼저 3·1만세 함성
남도의병 역사공원 조성 최적지
2019년 07월 31일(수) 04:50

보성군은 호남 의병의 중심 거점으로 외세 침략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 민족자존의 가치를 드높인 구국충절의 의향이다. 벌교읍 금곡마을에 있는 홍암 나철 선생 기념관. <보성군 제공>

777명의 위인을 발굴한 ‘보성 의병사’






모의장군 최대성 동상






백범김구 은거 기념관에 전시되어있는 사진






머슴 출신 의병장 안규홍을 다룬 창작극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 공연모습.






임진왜란에서 일제강점기, 3·1운동, 광복에 이르기 까지 혼돈의 역사 속에서 보성의 의로운 민초들은 굳건히 일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웠다. 보성군이 구국충절 의향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성군은 최근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해상의병의 거점이자 전라좌의병의 구심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보성 의병사’를 발간해 총 777명의 위인을 발굴하는 등 의병 역사 선양 사업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처럼 보성군은 역사적 중요성에서 의병사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전라남도의 중심에 위치해 남도의병 역사공원 조성의 최적지로 꼽인다.



◇근대적 사상가 죽천 박광전, 신분을 뛰어넘은 리더십 머슴 출신 의병장 안규홍

죽천 박광전 선생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창의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각각 67세와 72세다. 조선시대 평균수명이 30세였음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100세도 넘는 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시 창의 격문에는 불참할 시 연좌제로 가족까지 벌하겠다는 내용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박광전 선생은 왕에 대한 충성이나 불참자에 대한 복수 보다 가족과 이웃, 민족을 구해야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근대적 민권사상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한말 의병 활동에 나선 의병장 안규홍은 전국 유일의 머슴출신(담살이) 의병장이다. 안규홍은 전투기술과 신출귀몰한 위장술로 인해 일본군이 신원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안규홍을 ‘거괴’로 분류 일본군 중 가장 악랄한 육군 정규군 14연대를 파견해 안규홍 부대를 말살하려 하기도 했다.

또 안규홍 부대에는 양반 유생들이 뜻을 함께하며 신분의 격차를 뛰어넘어 구국정신으로 민족이 하나로 융합되는 항일투쟁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도 있다.



◇이순신 장군, 백범 김구, 송재 서재필, 홍암 나철 등 불굴의 애국지사와 인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선조에게 보낸 장계 ‘금신전선 상유십이’가 쓰인 곳이 바로 보성의 열선루다. 열선루는 조선 수군 재건의 현장이었으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상징적인 장소라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보성에서 10일간 머물며 수군을 모병하고, 군량미를 확보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보성의 선거이 장군, 최대성 장군 등과 함께 싸웠다.

독립운동가의 정신적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은 1898년 보성 득량면 쇠실마을에서 40여일간 피신해 생활했으며, 광복 후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다시 쇠실마을을 찾아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민족 독립운동의 선각자 송재 서재필 선생은 외가인 보성 문덕면 가내 마을에서 보성군수 서광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갑신정변에 참여하고 독립신문 창간과 독립협회 창립, 상해임시정부 활동 등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또 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선생은 벌교읍에서 태어나 민족 대종교를 만들어 단군역사를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만주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한 호남 의병 정신을 계승한 인물이다.

나철 선생은 유신회를 조직하고 포츠머스 강화회의에 참석했으며 을사오적 암살단을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 1세대이자 독립 운동의 아버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 일제강점기를 거쳐 독립까지 약 350년 간 의병사 종합판

보성의 의병사는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592년부터 조국이 광복한 1945년까지 약 350년 간의 세월을 모두 포용하는 우리나라 의병사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광해군의 스승이자, 퇴계이황의 제자 죽천 박광전 선생은 노령한 나이에 의병 700여 명을 거병하여 전라좌의병을 창의했고, 임계영 장군이 의병장이 되어 진주성 전투에 참전하며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보성에서 창의한 전라좌의병이 진주성 전투 등 전국구로 의병활동을 펼친 기록은 보성 의병이 지역방위를 넘어 전국적인 의병활동에 적극 나섰다는 것을 뜻한다.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에서 출생한 모의장군 최대성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막하 한 후장으로 한산대첩 부산포 해전을 비롯한 거제, 옥포, 당항포, 함포, 웅포, 안골포 등 수많은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올렸다.

정유재란 때는 아들(언립, 후립), 동생(대민, 대영) 등 가족과 친지를 비롯한 수천명을 인솔해 일본에 맞서 싸워 연전연승했다. 그러나 장군은 보성 안치대전에서 적군을 대파하고 도주하는 적장을 추격하던 중 숨어있던 적의 유탄에 맞아 득량면 군두에서 순절했다.

병자호란에는 보성에서 우산 안방준 의병장이 호남병자창의소를 세워 창의했다.

이와 함께 호남에서 가장 먼저 3·1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 곳 또한 보성이며 이는 호남지역 만세운동에 불을 당겼다.

이외에도 보성은 6·25전쟁 전후로 민족상잔의 한을 담은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로 아픈 역사를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등 의병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포괄하는 문화적 자원까지 겸비하고 있다.

/김대성 기자 bigkim@kwangju.co.kr

/보성=김용백 기자 kyb@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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