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구의 中國 인물 이야기 <183> 주전충
당 멸망 시키고 ‘오대십국’ 시대 열어
2019년 05월 28일(화) 00:00

<초당대총장>

주전충(朱全忠. 852~912)은 안휘성 출신으로 당말 황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왕조의 실력자가 되었다.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후량을 세워 천하가 오대십국(五代十國)으로 분열되는 계기가 되었다.

본명은 주온(朱溫)으로 황소의 반란군에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다. 유력 부장으로 활동하던 중 반군 지도부와 갈등으로 당에 귀순하였다. 하중절도사 왕중영의 공격으로 곤경에 처했는데 황소 측근인 맹계가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반군의 미래를 어둡게 본 주온은 황소의 감군사 엄실을 죽이고 당에 투항하였다. 희종은 크게 기뻐해 좌금오위대장군, 하중행영 부토초사 직위를 주었다. 전충이라는 이름도 하사했다. 주온은 당을 배신하고 황소와 결탁한 체주절도사 진종권 세력을 평정했다. 887년 절도사 주신, 주군 형제를 토벌했다. 조정은 공을 인정해 덕정비를 세웠다. 888년 희종의 뒤를 이은 소종은 3000호를 추가로 하사하고 고향 이름을 패왕리(沛王裏)로 변경하였다. 소종은 환관 세력과 갈등 상황이었다. 자신을 황제로 옹립한 환관 왕복공이 환관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소종 황후의 아버지 왕괴를 절도사로 임명하려는 소종과 갈등을 빚었다. 황제는 왕복공을 파면했다. 양복공은 한중으로 도망쳐 조정에 반항했다. 봉상절도사 이무정이 양복공을 진압하면서 실세로 떠올랐다. 이로써 주전충과 이무정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소종은 재상 채윤과 환관 주살 계획을 세웠는데 거사 전에 누설되었다. 최윤은 주전충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환관들이 황제를 모시고 봉상으로 도망쳤다. 902년 그는 봉상을 공격해 이무정의 항복을 받아냈다. 주전충과 최윤은 성내 환관을 몰살했다. 장안의 환관과 각지에 파견된 환관도 모두 살해되었다. 이로써 왕조를 괴롭혔던 환관의 전횡이 사라졌다. 조카 주우륜을 장안에 남겨놓고 본거지인 대량으로 돌아갔다. 903년 조카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조카의 죽음 뒤에 최윤이 있다고 생각했다. 황제 자리를 노린 주전충은 904년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최윤의 저택을 공격해 일당을 모두 죽였다. 소종을 압박해 근거지 대량과 가까운 낙양으로 옮긴 다음 시해했다. 904년 13세 휘왕 이조를 이축으로 개명해 즉위시키니 당 최후의 황제 애제다. 907년 애제로부터 양위 받아 후량을 세웠다. 당왕조는 290년만에 멸망했다. 애제는 제응왕에 봉해졌다가 독살되었다.

그는 성정이 잔인하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한 야심가였다. 895년 주신과의 전쟁에서 3천명의 병사를 생포했다. 그는 사로잡은 포로들을 한명도 남기지 않고 죽였다. 가정사도 복잡했다. 정실인 장 왕후가 죽자 황음무도한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아들들이 전쟁터에 나간 사이에 며느리들과 근친상간을 자행했다. 양자 주우문의 처 왕씨를 총애해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아들 주우규는 내주자사로 좌천되었다. 아버지를 시해하기로 결심하고 금위군 지휘관 한경과 결탁해 아버지의 처소를 급습했다. 주우규는 “늙은 도적이 여기 죽는다”고 소리치며 등을 찔러 죽였다.

황소가 장안에서 쫓겨나 낭호곡에서 비참하게 죽은 반면 그는 새 왕조를 세우는데 성공했다. 황소가 뚜렷한 근거지 없이 도처를 유랑한 반면 그는 대량을 손에 넣어 확실한 근거지로 삼았다. 지세가 험준하고 낙양에 가까운 요충지였다. 적이 강할 경우 전략적으로 외교관계를 맺어 충돌을 피했다. 자신의 세력이 강해지면 가차없이 공격해 세력을 키웠다. 선제공격에 능해 적을 기습해 근거지를 장악하는 작전을 구사했다. 당왕조를 지탱한 귀족과 관료 집단을 제거해 왕조의 근간을 약화시켰다. 904년 수십여명의 귀족과 관료를 하남성 활현의 백마역에 모아 죽이고 시체를 황하에 내던졌다. 측근 이진이 “이들은 평생을 청류라 뽐내었으니 황하에 던져 탁류로 만들어 버리는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웃으며 허락했다고 한다. 후량 왕조의 지배권은 화북에 한정되었다. 지방정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극용의 하동번진은 그에게 끝까지 대적하였고 이극용의 아들대에 후량을 멸하고 후당을 세웠다. 오대십국의 분열시대가 약 50여년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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