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랑나무 연리근 : 수백년 세월 버텨온 저 ‘사랑나무’를 보라
2019년 05월 01일(수) 00:00 가가
두 나무 합쳐진 느티나무 ‘연리근’
나무앞에서 기도하면 사랑·소원 이루어져
이광사 선생 현판 걸린 단아한 ‘침계루 ’
꼬리로 가재 잡아먹은 호랑이 설화 전해져
나무앞에서 기도하면 사랑·소원 이루어져
이광사 선생 현판 걸린 단아한 ‘침계루 ’
꼬리로 가재 잡아먹은 호랑이 설화 전해져
“땡그렁” 봄날 풍경 소리가 맑다. 허공에서 물고기가 바람에 날린다. 구리조각의 조형물이다. 풍경은 왜 새가 아니고 물고기일까. 산사에 들 때면 늘 궁금했다. 새를 달아놓으면 훨씬 자유로울 텐데 말이다.
대흥사(주지 월우)의 풍경 소리에 오래 발길이 머문다. 실바람에도 풍경은 청아한 소리를 풀어낸다. 풍경은 아이손바닥처럼 귀엽고 앙증맞다. “땡그렁” 미세한 움직임에도 소리는 사방을 물들인다. 흔들리는 것은 이편의 마음도 한가지다. 그러나 소리는 판이하다. 풍경의 그것에는 걸림이 없다. 열반에 이르는 과정 또한 그러할 것이다. 무심과 청심의 도다. 세속에 물든 이의 사리로는 분별되지 않는다.
“대중들의 마음은 매번 흔들리는 걸까요?” 필자는 흔들리는 풍경을 향해 물었다.
“본디 마음이란 그런 거외다.” 풍경이 잔잔한 울림으로 답한다. 다시 연유를 물었다. “마음을 묶어둘 수는 없을까요?” 그러자 풍경이 덧붙인다. “마음은 원래부터 없는 무(無)인 거외다. 묶는다는 그 생각 자체를 버려야할 것이외다.”
공덕은 쉽게 쌓는 게 아닌가 보다. 마음공부는 스스로를 버리지 않으면 득할 수 없으니. 공덕 높은 스님들은 그래서 ‘여반장 하듯 변하는 마음부터 다스리라’ 하지 않던가.
풍경 소리를 들으며 경내에 든다. 침묵과 침잠의 고요가 좋다. 대흥사는 대사찰임에도 언제 와도 번잡하지 않다. 불어오는 바람에 풍경소리가 귀를 적신다.
“스님들의 지팡이에는 작은 방울이 달려 있답니다. 사람을 피해가라는 뜻이지요. 풍경소리도 동일한 연유입니다. 바람에 흩어지는 풍경소리에 산짐승들도 수행처를 피해 가라는 뜻이기도 하구요.”
수관스님의 설명이다. 스님의 인상은 맑고 순하다. 수행정진을 하는 이의 고전적인 표정이라고나 할까.
스님은 “풍경이 물고기 형상인 것은 눈을 뜬 물고기처럼 수행에 정진을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며 “바람에 풍경소리가 일렁이듯 각성의 순간도 불시에 찾아드는 것인지 모른다”고 덧붙인다.
그처럼 불가의 사물에는 깊은 뜻이 있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과 같은 불전사물마다 산문 밖 사람들은 모르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걸음을 옮겨 북원에서 남원으로 접어든다. 바람에 실려오는 풍경소리가 길을 밝힌다. 대흥사에서 꼭 보고 싶었던 풍경이 북원과 남원 사이에 있다. 바로 연리근(戀里根)이다. 두 나무가 합쳐진 것을 ‘연리’(戀里)라고 한다. 밑둥이 다른 나무가 자라면서 몸체나 줄기가 맞닿는 현상이다. 세월의 힘이다. 인연의 힘이다. 아니 사랑의 힘이다. 사랑은 그렇게 존재를 부른다. 이편과 다른 존재를 기억한다. 개별자들의 인연은 그렇게 하나로 연하여 조화를 이룬다.
“대흥사 연리근은 천년된 느티나무입니다. 왼쪽은 음의 형태, 오른쪽은 양의 형태로 마치 남녀가 천년 동안 사랑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연리나무 앞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이 이곳에 와 웨딩포토를 찍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지요.”
성보박물관 박충배 관장의 설명이다. 박 관장은 “삼국사기와 고려사에도 연리나무에 대한 내용이 전해진다”며 “우리 조상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경사스러운 길조로 여겼다”고 부연한다.
연리나무가 주는 의미가 가볍지 않다. 수령이 500년으로 추정된다 하니 두 나무의 사랑이 더없이 가없다. 이 나무를 사랑나무라 이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두 몸은 필경 하나이지 않았을까. 한 뿌리에서 발현한 나무라면 필경 동일체일 게다.
“하늘에서는 우리 둘이 비익조가 되어 살고지고/ 땅 위에서는 우리 둘이 연리나무 가지가 되어지고/ 천지는 영원한 것이라고 하지만 어느 땐가 마지막 날이 오는데/ 그러나 이 슬픈 사랑의 한스러움은 길이길이 다할 날이 없으리.”
연리지에 대해 노래했던 당나라 시인 백낙천의 ‘장한가’(長恨歌)가다. 절세미인 양귀비와 당나라 현종과의 사랑을 소재로 한 시다. 양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 등 중국 4대 절세미인 가운데 한명이다. 그들의 사랑은 얼마나 깊었을까.
시에 나오는 비익조(比翼鳥)는 전설의 새다.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다. 짝을 이루지 못하면 날지 못하는 불운의 새다. 비익조와 연리나무는 오늘의 가벼운 사랑을 힐난한다. 인스턴트처럼 쉽게 닳아지고 소모되는 사랑이 차고 넘친다. 어떤 이들은 충전을 하듯 사랑을 한다. 쇼핑을 하든 사랑을 하는 이들도 있다. 오늘의 세태는 지고지순을 능멸한다.
연리나무의 사랑을 담뿍 담고 침계루(枕溪樓)로 향한다. 이름이 시적이다. 시를 한 수 지어도 좋을 풍경이다. ‘계곡을 베개 삼은 누각’. 금당천(金塘川)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자 2층 누각이 나온다.
금당이라는 말은 바로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한다. 침계루는 주심포식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다. 건물이 아름답고 단아해 한번 보면 뇌리에 남는다.
대흥사에는 원교(員嶠·1705~1777) 이광사의 편액이 4점이 있다. 대웅보전과 침계루 그리고 원종대가람, 천불전의 글씨가 그의 작품이다. 침계루는 대흥사 북원(北院)의 출입문으로, 맞은편에는 대웅보전이 있다. 특히 침계루에는 원교의 글씨가 걸린 현판이 2개나 있다. 위층에는 법고와 목어, 운판 외에도 이곳의 내력을 보여주는 24개의 현판과 시액도 있다.
“침계루에는 나무에 매달린 호랑이와 가재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합니다. 노승께서 호랑이에게 짐승을 잡아먹지 말라는 계시를 내렸어요. 헌데 물속에 있는 가재를 잡아먹기 위해 호랑이가 꼬리를 물속에 늘어뜨렸답니다. 호랑이는 가재가 꼬리의 털을 물면 슬그머니 꼬리를 올려 가재를 잡아먹었지요. 노승이 노하여 칡넝쿨로 소나무에 호랑이를 매달았다는 설화가 전해옵니다.”
박충배 관장의 설명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설화 속 호랑이는 그나마 희극적이다. 그러나 오늘의 ‘호랑이들’은 말 그대로 ‘맹수’다. 호가호위하는 이들도 도처에 넘쳐난다. 위세 또한 대단하다. 민생은 어렵고 살림살이는 팍팍한데 말이다.
노을이 지는 시간이다. 일장춘몽처럼 모든 것은 지기 마련인데…. 따사로운 봄 햇볕이 아름답게 스러진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대흥사(주지 월우)의 풍경 소리에 오래 발길이 머문다. 실바람에도 풍경은 청아한 소리를 풀어낸다. 풍경은 아이손바닥처럼 귀엽고 앙증맞다. “땡그렁” 미세한 움직임에도 소리는 사방을 물들인다. 흔들리는 것은 이편의 마음도 한가지다. 그러나 소리는 판이하다. 풍경의 그것에는 걸림이 없다. 열반에 이르는 과정 또한 그러할 것이다. 무심과 청심의 도다. 세속에 물든 이의 사리로는 분별되지 않는다.
“본디 마음이란 그런 거외다.” 풍경이 잔잔한 울림으로 답한다. 다시 연유를 물었다. “마음을 묶어둘 수는 없을까요?” 그러자 풍경이 덧붙인다. “마음은 원래부터 없는 무(無)인 거외다. 묶는다는 그 생각 자체를 버려야할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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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에는 두 느티나무가 합쳐진 연리나무가 있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하여 사찰을 찾는 이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드린다. <대흥사 제공> |
“스님들의 지팡이에는 작은 방울이 달려 있답니다. 사람을 피해가라는 뜻이지요. 풍경소리도 동일한 연유입니다. 바람에 흩어지는 풍경소리에 산짐승들도 수행처를 피해 가라는 뜻이기도 하구요.”
수관스님의 설명이다. 스님의 인상은 맑고 순하다. 수행정진을 하는 이의 고전적인 표정이라고나 할까.
스님은 “풍경이 물고기 형상인 것은 눈을 뜬 물고기처럼 수행에 정진을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며 “바람에 풍경소리가 일렁이듯 각성의 순간도 불시에 찾아드는 것인지 모른다”고 덧붙인다.
그처럼 불가의 사물에는 깊은 뜻이 있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과 같은 불전사물마다 산문 밖 사람들은 모르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걸음을 옮겨 북원에서 남원으로 접어든다. 바람에 실려오는 풍경소리가 길을 밝힌다. 대흥사에서 꼭 보고 싶었던 풍경이 북원과 남원 사이에 있다. 바로 연리근(戀里根)이다. 두 나무가 합쳐진 것을 ‘연리’(戀里)라고 한다. 밑둥이 다른 나무가 자라면서 몸체나 줄기가 맞닿는 현상이다. 세월의 힘이다. 인연의 힘이다. 아니 사랑의 힘이다. 사랑은 그렇게 존재를 부른다. 이편과 다른 존재를 기억한다. 개별자들의 인연은 그렇게 하나로 연하여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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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계루 벽면에 그려진 호랑이 그림(위)과 가재 그림. |
성보박물관 박충배 관장의 설명이다. 박 관장은 “삼국사기와 고려사에도 연리나무에 대한 내용이 전해진다”며 “우리 조상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경사스러운 길조로 여겼다”고 부연한다.
연리나무가 주는 의미가 가볍지 않다. 수령이 500년으로 추정된다 하니 두 나무의 사랑이 더없이 가없다. 이 나무를 사랑나무라 이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두 몸은 필경 하나이지 않았을까. 한 뿌리에서 발현한 나무라면 필경 동일체일 게다.
“하늘에서는 우리 둘이 비익조가 되어 살고지고/ 땅 위에서는 우리 둘이 연리나무 가지가 되어지고/ 천지는 영원한 것이라고 하지만 어느 땐가 마지막 날이 오는데/ 그러나 이 슬픈 사랑의 한스러움은 길이길이 다할 날이 없으리.”
연리지에 대해 노래했던 당나라 시인 백낙천의 ‘장한가’(長恨歌)가다. 절세미인 양귀비와 당나라 현종과의 사랑을 소재로 한 시다. 양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 등 중국 4대 절세미인 가운데 한명이다. 그들의 사랑은 얼마나 깊었을까.
시에 나오는 비익조(比翼鳥)는 전설의 새다.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다. 짝을 이루지 못하면 날지 못하는 불운의 새다. 비익조와 연리나무는 오늘의 가벼운 사랑을 힐난한다. 인스턴트처럼 쉽게 닳아지고 소모되는 사랑이 차고 넘친다. 어떤 이들은 충전을 하듯 사랑을 한다. 쇼핑을 하든 사랑을 하는 이들도 있다. 오늘의 세태는 지고지순을 능멸한다.
연리나무의 사랑을 담뿍 담고 침계루(枕溪樓)로 향한다. 이름이 시적이다. 시를 한 수 지어도 좋을 풍경이다. ‘계곡을 베개 삼은 누각’. 금당천(金塘川)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자 2층 누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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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베개 삼은 누각’이라는 뜻의 침계루에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가 걸려 있다. |
대흥사에는 원교(員嶠·1705~1777) 이광사의 편액이 4점이 있다. 대웅보전과 침계루 그리고 원종대가람, 천불전의 글씨가 그의 작품이다. 침계루는 대흥사 북원(北院)의 출입문으로, 맞은편에는 대웅보전이 있다. 특히 침계루에는 원교의 글씨가 걸린 현판이 2개나 있다. 위층에는 법고와 목어, 운판 외에도 이곳의 내력을 보여주는 24개의 현판과 시액도 있다.
“침계루에는 나무에 매달린 호랑이와 가재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합니다. 노승께서 호랑이에게 짐승을 잡아먹지 말라는 계시를 내렸어요. 헌데 물속에 있는 가재를 잡아먹기 위해 호랑이가 꼬리를 물속에 늘어뜨렸답니다. 호랑이는 가재가 꼬리의 털을 물면 슬그머니 꼬리를 올려 가재를 잡아먹었지요. 노승이 노하여 칡넝쿨로 소나무에 호랑이를 매달았다는 설화가 전해옵니다.”
박충배 관장의 설명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설화 속 호랑이는 그나마 희극적이다. 그러나 오늘의 ‘호랑이들’은 말 그대로 ‘맹수’다. 호가호위하는 이들도 도처에 넘쳐난다. 위세 또한 대단하다. 민생은 어렵고 살림살이는 팍팍한데 말이다.
노을이 지는 시간이다. 일장춘몽처럼 모든 것은 지기 마련인데…. 따사로운 봄 햇볕이 아름답게 스러진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