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현의 문화카페] ‘총괄건축가제’가 반가운 까닭은
2019년 02월 20일(수) 00:00
“흔히 그 도시가 ‘문화도시다’ ‘아니다’는 도시의 분위기, 시민들이 ‘문화적’이냐 아니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왜 프랑스 파리를 예술의 도시라고 부르는 줄 압니까. 바로 멋을 아는 시민들의 미의식 때문이예요. ‘파리지엥’들은 스카프 하나를 목에 두르더라도 확실히 달라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광주에 내려갈때마다 ‘광주다운 색깔’을 느끼지 못했어요. 대구를 가든, 전주를 가든, 국내 도시들은 다 거기서 거기예요.”

지난 2006년 4월, 광주일보 창사 54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에서 이어령(84) 전 문화부 장관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광주만의 톤’을 역설했다. 2시간의 대담이 10분 정도로 느껴질 만큼 열변을 토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문화수도의 미래와 관련된 질문에는 인문학적 혜안과 통찰력으로 공공디자인의 가치를 역설했다. 무엇보다 그는 광주의 회색빛 거리와 색깔없는 건축물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간판과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듯 한 건물들을 볼 때면 예향과 비엔날레 도시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도 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광주의 거리와 건축물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도심을 거닐다 보면 여전히 칙칙한 건물과 여백을 찾기 힘든 간판들이 거리를 압도한다. 그야말로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여기에는 지난 2005년 이후 제1회 디자인비엔날레와 2018년 국제도시 디자인 포럼 등 빅 이벤트를 공공디자인과 연계하지 못한 광주시의 안일한 행정 탓이 크다. 지난 2000년 이후 서울, 부산, 김해 등 타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공공디자인을 화두로 삼은 것과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지난 2007년 5월 디자인 서울총괄본부를 발족한 서울시는 공공디자인 분야의 권위자인 권영걸 서울대 미대학장을 수장으로 앉혔다. 말이 본부장이지 부시장급에 해당하는 요직이었다. 볼거리가 많더라도 도시의 분위기가 ‘문화적’이지 못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름하여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 초기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한가하게 디자인 타령’이냐는 일부 반발도 있었지만 뚝심있게 추진한 덕분에 도시경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듬해에는 세계디자인 수도로 선정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최근 광주시도 건축·도시공간 혁신을 위해 ‘총괄건축가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건축기본법에 따라 민간 전문가가 공공행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디자인이 우수한 공공건축물을 건립해 광주다운 도시공간을 창출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매력적인’ 광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정체성과 건축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역량있는 총괄건축가 선임과 행정의 뒷받침이 전제돼야 한다.

한 도시의 품격은 화려한 랜드마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미적 감각이 가미된 건축물, 정체성 있는 간판, 시내버스 정류장이나 길거리의 쓰레기통까지 ‘생활 속 디자인’들이 어우러질 때 더욱 빛난다. 모쪼록 이번 총괄건축가제가 광주의 개성을 살리는, 마법의 카드가 되길 기대한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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