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의 유럽 예술기행] <2> 이탈리아-로마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치유였다
2018년 08월 14일(화) 00:00
포롤로 광장과 이집트에서 가져온 첨탑 오벨리스크.






요한 티슈바인이 그린 괴테 초상화들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








지금 내가 가는 곳은 숙소에서 15분 거리밖에 되지 않은 괴테 박물관이다. 괴테가 로마 여행 중에 묵었던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괴테는 왜 독일에서의 명성과 안주를 버리고 로마로 왔을까? 괴테는 이탈리아에서 무엇을 보고자 했을까? 내가 머문 호텔 앞의 코르소 거리 왼쪽 끝은 포로 로마노이고, 오른쪽 끝은 포폴로 광장이다. 핀초 언덕과 테베레 강 사이에 있는 ‘민중의 광장’이란 뜻의 포폴로 광장은 1820년 건축가 주세페 바라디에가 설계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기원전 3세기 유물 36미터 높이의 오벨리스크가 광장 중심에 솟아 있다. 포폴로 문은 기원전부터 유럽에서 로마로 들어오는 북문. 외국인은 반드시 포폴로 문을 거쳐야 했다고 그러니 괴테도 그 관문을 통과했을 터.

괴테박물관은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는 포폴로 광장으로 걸어가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광장의 한 건물 벽면에는 우리의 국력인 양 삼성 휴대폰 광고판이 걸려 있다. 광장 한쪽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도 보인다. 거리의 악사는 이른 아침부터 기타를 치며 귀에 익은 비틀즈의 ‘Yesterday’를 부르고 있다. 나는 괴테 박물관 문이 열리는 오전 10시까지 광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광장의 남쪽 코르소 거리 초입에는 이른바 ‘쌍둥이 성당’으로 불리는 산타 마리아 디 미라콜리와 산타 마리아 디 몬테산토가 있다. 17세기에 건축된 성당으로 마틴 루터가 첫 미사를 올렸으며, 갈릴레이가 한때 구금당했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프랑스 대사관. 나는 잠시 또 괴테를 떠올리며 상념에 잠겨본다. 국내에서 보았던 세계문학사사전의 한 쪽이 기억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때는 1749년 8월 28일. 어린 괴테는 8세에 시를 짓고 13세에 첫 시집을 냈던바 신동이라 불렸단다. 귀족 신분은 아니었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하는 동안 문학과 회화,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했던 까닭이다. 아버지는 감수성이 예민한 괴테에게 여행담을 자주 이야기해 주었는데, 이탈리아에서 가지고 온 조각상이나 지도, 박물표본 등은 어린 괴테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법하다. 이탈리아는 자연스럽게 괴테의 이상향으로 자리 잡는다.

괴테는 대학에서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학을 전공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변호사로 일한다. 하지만 괴테의 관심은 법률이 아니라 늘 문학. 실제로 괴테는 여러 작가들과 사귀면서 시와 희곡 등을 습작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괴테는 1772년에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베출라르에서 일하는 동안 일방적인 짝사랑에 빠진다. 여인은 요한 케스트너라는 친구의 약혼녀 샤를로테 부프. 고향으로 돌아온 괴테는 친구 카를 빌헬름 예루잘렘이 자신과 흡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누구보다도 비통해 한다.

이와 같은 친구의 비보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1774년에 쓴 소설이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0대 중반의 괴테는 단 한 편의 작품으로 하루아침에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다. 베스트셀러가 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유럽을 뒤흔들고. 주인공 베르테르가 입었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외투 차림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을 정도였으니까. 베르테르처럼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는 젊은이들이 각 나라에서 생겨나기도 했고.

괴테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가 부담스러웠던 탓인지 1775년에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제2의 고향이 된 바이마르로 향한다. 인구 6천 명의 작은 공국의 신임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 는 애독자로서 괴테를 믿고 국정을 맡긴다. 추밀원 의원으로 추대하고 은과 구리광산의 운영권을 주었다. 그러나 괴테는 안주보다는 일탈을 꿈꾼다. 괴테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예술에 대한 갈증 때문. 안주의 저편에는 늘 불안과 불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괴테는 이러한 자신의 심신 상태를 지독한 병이라고 말했다. 괴테는 “나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써먹을 수는 없다”라고 불평하곤 했다. 지적인 애인 샤를로테 폰 슈타인이나 당대의 지식인 헤르더와의 교제도 그의 번민을 씻어주지는 못했다. 마침내 괴테는 바이마르 생활 10년 만에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괴테가 선택한 곳은 어린 시절의 이상향 이탈리아. 괴테는 1786년 9월 3일자 일기에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새벽 3시, 나는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8월 28일 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려던 그 친구들에게는 나를 만류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여행 가방 하나와 오소리 가죽 배낭만을 꾸려서 홀로 우편마차에 몸을 실으니 아침 7시 30분에 츠보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안개가 가득 낀 아름답고 조용한 아침이었다.’

괴테는 자신의 이탈리아 여행을 ‘비밀여행’ 혹은 ‘지하여행’이라고 말했다.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신분을 숨긴 채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밀여행을 결행한 괴테는 이탈리아의 주요 명소를 돌아보고 베네치아를 떠나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들어선 괴테 박물관에 도착한 날이 1786년 11월 1일이었다. 그날의 감격을 괴테는 일기에 적어 남겼다.

‘(전략) 지난 몇 년 동안은 마치 병이 든 것 같았다.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란 오직 이곳을 찾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몸을 이 땅에다 두는 것밖에 없었다.(하략)’

누구라도 괴테의 말에 공감할 것 같다. 괴테에게 여행이란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박물관 2층 카운터에서 입장권을 받았는데, 65세 이상은 할인을 해준다. 몇 유로 할인이지만 그래도 행운이다. 큰 규모의 박물관은 아니다. 20분이면 각 방을 모두 돌아볼 수 있는 규모다. 괴테의 저서들을 모아놓은 방, 괴테의 초상화가 있는 방, 괴테의 식물 스케치와 여행경비 목록을 세세하게 기록한 노트가 전시된 방들이 전부이다. 그런데 나는 요한 티슈바인이 그린 ‘캄파냐의 괴테’란 제목의 괴테 초상화를 보면서 한동안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만다. 그림 속에서 갑자기 살아 나온 괴테에게 붙들린 사람처럼. 독일 슈테델 미술관에 있는 초상화를 모사한 그림이지만 내 눈으로는 진품과 모사품을 구별하지 못하겠다. 괴테가 자신의 초상화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작품이다. 하얀 망토를 걸친 괴테가 로마 남쪽 캄파냐 평원에 널브러진 유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초상화다. 괴테의 얼굴에는 이탈리아 여행이 주는 행복감이 어려 있다. 로마에서 보낸 1787년 8월11일자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단 하루도 미술에 대한 지식을 쌓거나 훈련하지 않고 보내는 날은 없습니다. 병뚜껑을 열고 물속에 집어넣으면 쉽게 물이 차오르듯이 감수성이 풍부하고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은 로마에서 내면의 충만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괴테 박물관을 나온 나는 괴테 초상화 배경인 캄파냐 평원으로 가기로 하고 택시를 부른다. 택시 기사가 캄파냐에는 다리 형식의 수로인 수도교(水道橋)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괴테 초상화 오른편 끝 중간쯤에서 수도교 유물을 본 듯하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물체의 기울기를 이용해서 물을 흘려보내는 다리 형식의 수로가 발달했다는 것을 역사시간에 배운 기억이 난다. 토목과 건축의 고도한 공법, 인간의 끈질긴 도전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괴테 역시 머나먼 수원지에서 로마시민들의 분수나 공중목욕탕, 귀족의 저택이나 부잣집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수도교를 보고 몹시 감탄했을 것 같다. 대표적인 클라우디우스 수도교는 칼리굴라 황제가 38년에 착공을 시작하여 로마제국 네 번째 황제인 클라우디우스가 52년에야 완공했으며, 그밖에 10개 수로를 통해 로마 시내로 하루 3억 갤런 정도의 맑은 물을 공급했다고 하니 말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수도교 유물은 수원지에서부터 길이가 무려 90여km쯤 된다고 하니 나도 경이롭다. 괴테가 23살에 구상하고 집필하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몇 개월 전 60여 년 만에 완성한 ‘파우스트’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전율이란 인간이 지닌 최상의 감정이다.’ /글·사진=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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