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띄우는 그림편지Ⅳ] <5> 파리 라 데팡스 - 조근호
프랑스 혁명의 도시에서 광주 내일을 보다
2018년 06월 21일(목) 00:00

30년에 걸친 장기 개발 구상에 따라 완성된 파리의 미래도시 ‘라 데팡스’는 유명 건축가들의 건물이 어우러진 곳으로 파리가 과거와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가기 위한 도약처다.

지난 4월 광주시립미술관과 ‘파리 국제 예술 공동체’가 공동 기획한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예술의 도시 파리에 다녀왔다. 이번 전시에는 광주 작가 7명과 파리 작가 7명이 함께했다. 11시간의 비행 끝에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니 청년작가였던 23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호기심과 꿈에 부풀어 있던 나에게 파리는 첫 해외여행지였고, 강산이 두번이 바뀐 지금 다시 공항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파리는 예나 지금이나 세월의 무게만큼 묵직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고 세월의 분진을 둘러 입은 회백색 건축물이 나를 반겼다. 그간 도시 풍경을 소재로 작업해 온 나는 어느 도시를 가든 도시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게 익숙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라 데팡스에 꼭 가보고 싶었다. 23년 전 라 데팡스를 보지 못했던 아쉬움을 해소하고 미래도시 라 데팡스의 예술적인 건축물들과 미래를 내다본 도시계획이 어떤 지를 살피면서 우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기도 했다.

일행이 탄 버스가 라 데팡스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 차창 밖에 펼쳐지는 건물의 숲은 내 시선을 사로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도시 자체가 웅장한 예술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은 하늘과 맞닿은 각각 서로 다른 모습의 건물들로 병풍이 드리워져 있고 하늘의 구름들은 건물의 유리벽에 스며있어 스카이라인이 모호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라 데팡스 중심부에 우뚝 서 있는, 단순한 형태의 4각 문처럼 생긴 하얀 대리석 건물은 1989년에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건축가 오포 폰 스프렉켈슨이 설계한 신 개선문 ‘라 그랑드 아르슈’다.

‘라 데팡스’는 프랑스인들이 과거 혁명의 역사에서 현재를 거쳐 새로운 미래로 나가기 위한 도약처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점들이 우리 광주와 조금은 닮아있는 듯했다. 이번 여행에서 나의 호기심과 관심이 집중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신도시는 파리 중심가인 루브르궁에서 8Km 밖 46만평의 부지에 첨단업무, 상업, 주거시설 등이 고밀도 고층으로 조성된 파리의 부도심이다. 당시 대통령이던 미테랑과 파리 당국 등 자치단체로 구성된 라 데팡스 개발위원회가 1958년부터 30여년에 걸쳐 장기 발구상을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 대부분 공사를 마무리 했다.

이처럼 라 데팡스는 장기개발구상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로 모든 차량은 지하 도로를 이용하며, 지상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는 인도와 드넓게 펼쳐진 광장이 있어 보행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놓았다. 이런 인간중심적 구조에는 과거 프랑스인들이 뼈아픈 피의 역사를 통해 어렵게 얻어낸 민주성지로서의 자긍심이 내재돼 있고, 광장이 민주주의의 근원지이자 후대에도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를 계승하려는 의지의 표현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편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놓은 21세기 꿈의 도시 라 데팡스는 하늘과 땅을 동시에 걷는 듯 새로운 미지로의 여행이 계속되는 느낌을 주었다. 태고로부터 사람들이 살아오는 과정에서의 흔적들을 문명이라 했던가? 이러한 삶의 변화하는 흔적들이 21세기에 라 데팡스에서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일까? 인간들의 욕망이 하늘에 닿고 하늘은 욕망의 건물에 녹아 땅 위에 앉아 있다.

하늘 높게 치솟은 유리벽 건물과 건물 사이를 통과하는 빛은 서로 다른 벽면에 반사돼 시각적으로 새로운 면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 뭉게뭉게 구름들이 녹아들고, 옆 건물로 다시 스며들어 스펙트럼 효과에 의해 현란한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낸다.

라 데팡스의 하늘은 높고 다양한 형태의 유리벽 건물에 의해 스카이라인이 혼미해지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인간이 천지를 창조한 조물주의 영역에 도전하기라도 하는 듯 보였다. 지금 이 시간에도 라 데팡스는 내일을 향한 프랑스인들의 꿈을 담고 멈추지 않는 발걸음으로 미래를 그려 나갈 것이다.

이 시점에서 문득 우리 광주가 떠오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막대한 예산으로도 광주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현대건축물을 예술미와 역사의식으로 승화시켜내지 못한 건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의지의 부족이었을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데팡스의 상징물인 ‘신 개선문’


■조근호 작가는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 (1991~2017), 광주비엔날레 주제전 (광주비엔날레 주전시실), 진경-

그 새로운 제안전(국립현대미술관. 과

천) 등 그룹전, 뉴욕아트엑스포, 아트베

이징, 외 아트페어 다수참여

-한국미협 이사, 광주미협 부지회장, 대한

민국 미술대전심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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