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20〉 도쿄 진보초 고서점거리
2018년 04월 16일(월) 00:00 가가
武를 벗고 文을 입다
도쿄 지요다구(區) 간다 진보초(神保町·이하 진보초)는 광주 계림동의 헌책방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규모와 위상은 비교 불가이다. 고작 10개 안팎의 책방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계림동 헌책방 거리와 달리 진보초는 약 2km 길이에 170여 개의 고서점이 밀집해 있는 세계 최대의 북타운(book town)이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진보초 북 페스티벌은 59년의 역사를 자랑하듯 3일간의 행사에만 50여 만 명이 다녀가는 등 도쿄의 브랜드로 자라잡았다.
지난 겨울 어느 날, 시부야 역 한조몬선을 타고 진보초 역에서 내려 A6 출구로 빠져나오니 시계 바늘을 되돌린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책방 앞 매대에 올려놓은 책에선 퀴퀴한 냄새가 풍겼고, 낡은 털모자를 눌러 쓴 70대 할아버지는 돋보기로 책을 살펴 보고 있었다. 책방 주인들은 이른 아침 서점 앞을 지나는 손님들을 가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책을 진열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수백 여년 동안 이어져 온 진보초 거리의 정겨운 일상이다.
진보초 서점거리는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인 메이지 시대에 형성됐다. 원래는 에도시대 사무라이들의 숙소로 이용됐던 곳이었다고 한다. 도쿠가와 막부를 수호하는 게 이들의 주된 임무였지만 일본 전역에서 인사차 올라온 지방 실세들을 호위하는 일도 병행했다. 이들의 운명은 19세기 말 메이지 천황체제가 들어서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던 막부가 자취를 감추면서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것이다. 동시에 숙소와 부속건물도 천황이나 국가재산으로 귀속되면서 사무라이들의 근거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주인’을 잃은 사무라이의 빈 숙소에 온기가 퍼지게 된 건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된 국민교육정책이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무대로 진보초를 활용하기로 하면서 이 일대에 초·중·고등학교와 대학들이 건립됐다. 수많은 학교가 세워지자 자연스럽게 주변에 이들을 겨냥한 출판사가 문을 열었고 동시에 책방들도 하나 둘씩 등장했다. 여기에 새 책을 구입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중고 서적을 찾게 되면서 거대한 서점거리가 탄생하게 됐다. ‘무’(武)의 기운으로 거칠었던 진보초가 ‘문’(文)의 기운으로 산뜻하게 바뀌게 된 것이다.
진보초 거리가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독특한 콘텐츠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는 인문·예술·사회과학·역사 서적에서부터 대중적이고 선정적인 옐로우 잡지가 공존한다. 특히 170여 개의 서점은 저마다 특화된 주제의 서적들을 비치하고 있다.
진보초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고서점은 ‘유히가쿠(有斐閣·1877년 설립)와 ‘잇세이도’(一誠堂·1903년 오픈)다. ‘유히가쿠’ 서점이 정치·경제와 관련된 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면 ‘잇세이도’는 일반서적에서부터 영어 원서, 예술서적, 화집 등을 판매한다. ‘설국’으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추리작가 마쓰모토 세이초 등이 ‘잇세이도’ 서점의 단골손님이다.
‘잇세이도’는 3대째 가업을 이어온 일본 서점계의 대표적인 노포(老鋪)다.10년 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운영을 맡고 있는 타케히코 사카이 대표(71)는 오프라인 서점과 온라인 서점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서점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가운데에는 7세기의 그림(3억 원 상당)에서부터 불교 관련 서신(2∼3억 추정) 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도 많다.
“개인적으로 문학, 역사, 종교에 관심이 많아 옥션이나 고서 수집가들로부터 희구도서를 구입하고 있어요. 근래엔 한국과 중국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양국의 희귀 도서와 자료에 대한 구매 요청이 상당해요. 고서점의 고객들은 역사와 예술 등 자신들의 관심분야에 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타케히코 사카이 대표)
진보초 거리의 입구에 자리한 ‘냥코도’는 고양이 덕후들의 아지트다. 2013년 6월 문을 연 서점에는 2000여 권의 책과 사진집, 700여 종의 소품 등이 비치돼 애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면 세상의 모든 고양이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처럼 다양한 고양이의 이미지를 표지로 내세운 도서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서가 옆에는 고양이를 주제로 제작된 티셔츠, 문구류, 아트상품, 패션소품 등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템들이 비치돼 있다. 이들을 둘러보는 데만 한나절이 걸릴 만큼 볼거리가 풍성하다.
올해로 개점 5주년을 맞은 ‘냥코도’가 집사들의 성지가 되기까지에는 아네카와 후미오(66) 사장의 딸 유코(35)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40여 년 동안 신간 도서를 판매하는 ‘아네가와 서점’을 운영하던 후미오씨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매출의 상당액을 차지하던 잡지독자들이 줄어들면서 문닫을 위기에 처했다. 부인과 상의해 서점을 접을까 고민하던 그는 회사원이었던 딸에게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우리 가문의 역사가 깃든 서점을 운영해보면 어떠냐”고 제안한다.
당시 유기묘 ‘리쿠오’를 입양한 후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진 딸은 ‘아네가와 서점’을 고양이의 놀이터로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다. 고양이를 기르는 동안 관련 서적을 구하고 싶었지만 파는 곳이 거의 없어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마침내 2013년 아네카와 부부, 딸 유코, 고양이 ‘리쿠오’ 등 총 4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고양이 전문 서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리쿠오는 ‘냥코도’의 점장이자 SNS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유코씨가 정기적으로 인터넷에 올리는 ‘리쿠오 점장으로부터’라는 사진은 단골 고객뿐 아니라 애묘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아네카와 후미오씨는 “우리는 고양이 관련 서적을 무조건 판매하는 게 아니라 딸과 내가 먼저 읽어 본 후 입고 여부를 결정한다”면서 “매년 유기묘 입양 이벤트 등을 개최해 단순한 서점이 아닌 애묘인들의 사랑방으로 거듭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jhpark@kwangju.co.kr
※ 이 기획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진보초 거리가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독특한 콘텐츠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는 인문·예술·사회과학·역사 서적에서부터 대중적이고 선정적인 옐로우 잡지가 공존한다. 특히 170여 개의 서점은 저마다 특화된 주제의 서적들을 비치하고 있다.
진보초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고서점은 ‘유히가쿠(有斐閣·1877년 설립)와 ‘잇세이도’(一誠堂·1903년 오픈)다. ‘유히가쿠’ 서점이 정치·경제와 관련된 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면 ‘잇세이도’는 일반서적에서부터 영어 원서, 예술서적, 화집 등을 판매한다. ‘설국’으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추리작가 마쓰모토 세이초 등이 ‘잇세이도’ 서점의 단골손님이다.
‘잇세이도’는 3대째 가업을 이어온 일본 서점계의 대표적인 노포(老鋪)다.10년 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운영을 맡고 있는 타케히코 사카이 대표(71)는 오프라인 서점과 온라인 서점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서점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가운데에는 7세기의 그림(3억 원 상당)에서부터 불교 관련 서신(2∼3억 추정) 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도 많다.
“개인적으로 문학, 역사, 종교에 관심이 많아 옥션이나 고서 수집가들로부터 희구도서를 구입하고 있어요. 근래엔 한국과 중국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양국의 희귀 도서와 자료에 대한 구매 요청이 상당해요. 고서점의 고객들은 역사와 예술 등 자신들의 관심분야에 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타케히코 사카이 대표)
진보초 거리의 입구에 자리한 ‘냥코도’는 고양이 덕후들의 아지트다. 2013년 6월 문을 연 서점에는 2000여 권의 책과 사진집, 700여 종의 소품 등이 비치돼 애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면 세상의 모든 고양이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처럼 다양한 고양이의 이미지를 표지로 내세운 도서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서가 옆에는 고양이를 주제로 제작된 티셔츠, 문구류, 아트상품, 패션소품 등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템들이 비치돼 있다. 이들을 둘러보는 데만 한나절이 걸릴 만큼 볼거리가 풍성하다.
올해로 개점 5주년을 맞은 ‘냥코도’가 집사들의 성지가 되기까지에는 아네카와 후미오(66) 사장의 딸 유코(35)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40여 년 동안 신간 도서를 판매하는 ‘아네가와 서점’을 운영하던 후미오씨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매출의 상당액을 차지하던 잡지독자들이 줄어들면서 문닫을 위기에 처했다. 부인과 상의해 서점을 접을까 고민하던 그는 회사원이었던 딸에게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우리 가문의 역사가 깃든 서점을 운영해보면 어떠냐”고 제안한다.
당시 유기묘 ‘리쿠오’를 입양한 후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진 딸은 ‘아네가와 서점’을 고양이의 놀이터로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다. 고양이를 기르는 동안 관련 서적을 구하고 싶었지만 파는 곳이 거의 없어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마침내 2013년 아네카와 부부, 딸 유코, 고양이 ‘리쿠오’ 등 총 4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고양이 전문 서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리쿠오는 ‘냥코도’의 점장이자 SNS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유코씨가 정기적으로 인터넷에 올리는 ‘리쿠오 점장으로부터’라는 사진은 단골 고객뿐 아니라 애묘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아네카와 후미오씨는 “우리는 고양이 관련 서적을 무조건 판매하는 게 아니라 딸과 내가 먼저 읽어 본 후 입고 여부를 결정한다”면서 “매년 유기묘 입양 이벤트 등을 개최해 단순한 서점이 아닌 애묘인들의 사랑방으로 거듭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jhpark@kwangju.co.kr
※ 이 기획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