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10)영국 채링 크로스 로드의 서점들
고서 보물창고 퀸토서점 문화공간 변신 포일스 서점
2018년 01월 08일(월) 00:00

런던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포일스 서점은 인문, 여행, 예술, 어린이 등 모든 장르의 서적과 카페, 장남가게 등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다.

영국 런던의 중심가에 자리한 채링 크로스 로드(Charing Cross Road)는 애서가들에겐 로망과 같은 곳이다. 고서와 예술서적 등 다양한 장르의 서적을 판매하는 수십 여개의 서점이 들어선 서점의 거리이기 때문이다. ‘애니 어마운트 북스(Any Amount of Books)와 같은 헌책방에서부터 페미니즘 전문서점인 ‘실버문’, 디자인·예술관련 서점 ‘쾨닝 북스’(Koening Book)는 마니아들의 성지로 불린다. 이 때문에 ㅐ채링 크로스 로드는 문학과 예술,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1970년 출간된 헬렌 한프의 소설 ‘채링 크로스 84번지’와 맨 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017년 제작)이 대표적인 예다.

그중에서도 채링 크로스 로드 72번지에 자리한 ‘퀸토 & 프란시스 에드워드’(Quinto & Francis Edwards·퀸토서점)은 ‘살아있는’ 역사다. 200여 년 동안 런더너들과 동고동락하며 휴식과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퀸토서점에 도착하던 날, 입구에 내걸린 ‘1855년부터 고서적을 판매해온 책방’이라는 간판이 시선을 끌었다. 순간 유서깊은 기념관에 온 듯했다. 책방 안으로 들어서자 헌책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끝에 와닿았다. 잉크냄새가 풍기는 대형서점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1층 서가는 낡고 오래된 책들로 빼곡해 마치 노교수의 서재를 엿보는 것 같았다. 하드커버의 고서는 비록 색이 바래고 낡았지만 고급스런 느낌이 묻어났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책은 주로 운송(해양, 항해)과 관련된 전문서적에서부터 체스, 건축, 사진, 영화, 음악, 외국어, 과학, 의학, 자연사, 어린이 등 다양하다. 하지만, 퀸토서점의 메인 아이템은 밀리터리 북과(군사학)과 여행 책이다. 밀리터리 북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출간됐던 고서들이 상당하며 여행 섹션에는 1805년 스트라노 출판사에서 발행한 여행가이드 북이 들어 있다. 당시 유럽 패키지 여행의 시초가 된 그랜드 투어(유럽의 미술이벤트 여행)를 겨냥해 출간된 책이다. 이전만 해도 패키지 투어를 다룬 책이 없었던 걸 감안하면 오늘날 가이드 북의 원조인 셈이다.

인상적인 건 서점을 둘러보는 짧은 시간 동안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에서부터 백발의 노신사까지 30분 사이에만 20여 명이 방문해 헌책들을 들춰봤다. 이곳을 찾는 고객은 주로 독서를 즐기는 애호가와 고서 컬렉터. 특히 서점 지하에 전시된 고서 섹션은 고서 수집가들의 아지트다. 매달 마지막 날, 책 정리를 위해 문을 닫는 데 그 이튿날에는 아침 일찍부터 새로운 ‘보물’들을 선점하려는 고객들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다고 한다.

퀸토서점과 더불어 오랜 세월 채링 크로스 로드를 지켜온 서점은 ‘포일스’(Foyles)다. 영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대중적인 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퀸토서점과 다른 건 인문, 철학, 여행, 어린이, 예술 등 모든 장르의 신간서적을 판매하는 대형체인점이라는 것이다.

1903년 문을 연 포일스는 한때 50km에 달하는 서가로 기네스북 ’세계 최대 서점’ 기록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100여 년의 역사를 찾기 힘든, 현대적인 분위기로 환골탈태했다. 낡고 먼지 쌓인 책장과 비효율적인 동선을 고집했던 전통을 깨고 개점 100주년인 지난 2003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했기 때문이다.

포일스가 변신을 선택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보수주의 스타일을 고수했던 여사장 크리스티나 포일(Christina Foyle·1911-1999) 때문이다. 창립자인 윌리엄 포일과 길포드 포일의 후계자였던 그녀는 생애 대부분을 이 서점의 최고경영자로 일했다. 1999년 6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주변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국의 전통을 내세워 ‘먼지투성이의 우중충한 서고’를 지켜왔다. 이 때문에 한두 시간 책방 안에 있으면 어두운 조명과 책 냄새로 현기증을 하소연하는 고객들도 많았다.

포일스 서점에 개혁의 물꼬를 튼 주인공은 크리스티나의 뒤를 이어 대표에 오른 그녀의 조카 크리스토퍼 포일이다. 그는 당시 약 300만파운드(약 60억 원)를 투입해 낡은 서가를 현대식 책장으로 교체하는 한편 예전의 창고 같던 분위기를 밝고 깔끔한 조명으로 대체했다.

물론 하드웨어만 바꾼 것은 아니었다. 과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외국 유학생을 파트 타임으로 고용했던 점원들을 대학을 졸업하거나 대학원을 나온 엘리트들로 교체했다. 온라인 서점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북 큐레이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리모델링을 마친 포일스는 런던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아동서적 섹션을 강화하고 장난감 가게를 입점시켜 과거보다 훨씬 아늑하고 쾌적한 여가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서점 1층 한가운데 꾸며진 화려한 조명과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는 시민들의 쉼터로 인기가 높다.

이 밖에도 퀸토서점 옆에 자리한 쾨닝 북스는 근래 독립서점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디자인과 짙은 회색 톤의 건물 외관에서부터 여느 서점과 차별화된 독특한 아우라가 묻어난다. 독일 브랜드인 쾨닝북스는 채링 크로스 로드, 소호 등 런던에만 3개의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예술전문서점으로 현재 유럽 전역에 60여 개의 체인점을 거느리고 있다. 1층에는 주로 미술, 디자인, 건축, 사진 등 신간이 진열돼 있고 지하로 내려가면 예술관련 고서적들이 낡은 서가에 꽂혀 있다.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작가, 문화애호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채링 크로스 로드의 서점들이 온라인 서점의 공세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전문적인 큐레이션과 고객 서비스, 그리고 영국 정부의 지원이다. 특히 영국 정부는 서점들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않도록 민간 사회적 기업들로 주축이 된 주택협회(Housing Association)를 통해 시세의 60∼80% 수준의 건물을 임대하거나 임대료를 지원한다.

한 달에 평균 3∼4번 채링 크로스 로드의 고서점을 찾는다는 캐롤 맥도널드(67) 씨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책들을 들춰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던 부모님과의 행복했던 추억이 떠오른다”면서 “서점 나들이는 노후 생활을 보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jhpark@kwangju.co.kr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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