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정의 독일이야기<2> 집권당이 바뀌어도 정책은 이어간다
2017년 08월 04일(금) 00:00
탈원전 이룬 ‘메르켈 연정’ 배우자
독일의 운전자들은 정지선을 참 잘 지킨다. 그런데 운전대를 직접 잡아보니 그 비밀이 풀린다. 정지선 밖에 멈춰야만 신호등이 보이도록 돼있다. 결국 모든 일은 제도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속방지턱도 없고, 경찰도 눈에 띄지 않지만 2014년 베를린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1.5명, 광주는 6.4명이다. 지난해 프랑스의 실업률은 10.1%인데 비해 독일의 실업률은 4.1%에 그쳤다. 무역규모는 2조6000억 달러로 유럽 1위다. 독일 정치가 국민들을 불안이 아닌 희망으로 이끌고 있다는 구체적 수치들이다. 독일 정치의 어떤 힘이 ‘안전한 신호등 위치’와 같이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지점을 놓치지 않는 것일까.

독일 정치의 최대강점은 정책의 연속성에 있다. 정권이 재창출되든 교체되든 간에 이전 정권의 정책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대표적 사례가 빌리브란트에서 콜 수상으로 이어진 동방정책, 슈뢰더에서 메르켈로 이어진 ‘아젠다 2010’과 탈원전 에너지정책이다.

1970년대 서독 총리에 오른 빌리 브란트는 동독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동방정책을 편다. 동독의 서독에 대한 의존성을 높여서 긴장을 완화시키는 한편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통일에 유리한 외부조건을 만들었다. ‘접촉을 통한 변화’를 핵심 기조로 삼은 동방정책은 마침내 베를린 장벽에 균열을 낸다. 그 동방정책 성공의 진짜 요인은 정책의 연속성에 있었다.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가 추진했던 이 정책을 기민당의 헬무트 콜이 정파적 손실을 따지지 않고 이어감으로써 독일 통일이 완성된다. 20년 동안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였다.

2003년 사민당 슈뢰더 총리는 우파적 경제개혁안인 ‘아젠다 2010’을 내놓는다.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고, 복지를 줄이는 등 반발이 큰 정책이었다. 그 ‘아젠다 2010’을 기민당의 메르켈 정부가 이어나갔다. 이 정책유지가 2008년 금융위기를 넘는데 큰 힘이었다고 독일 국민들은 이야기한다. 정책추진에 대한 신뢰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원전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독일까지 날아든 체르노빌의 먼지를 본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운동을 해나갔고, 정당은 이를 정책으로 담아냈다. 또한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연정과 협치를 통해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갔다.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정책의 성공은 연정과 협치의 산물이었다.

독일의 연정 전통은 독일 역사만큼 오래 되고 있지만 나치와 분단의 반성에서 더 구체화된다. 극렬한 좌우대립, 승자독식구도의 실패를 통해 연정이 가능한 선거와 정당구조를 제도적으로 만들어냈다. 연정은 독일정치의 건강성을 지키고 정당 정책의 실효를 거두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정지선이자 신호등인 셈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분당과 탈당이 빈번하고 그 회오리 속에서 끝까지 당을 지켰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독일식 연정은 부럽기 짝이 없다. 연정과 협치가 정치전통으로 자리를 했다면 분당과 탈당도, 정치적 먹잇감을 찾는 정쟁도 필요 없었을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지방정부에서도 정책계승의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시정 주체가 바뀌더라도 좋은 정책은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호남공약을 만들면서 에너지밸리, 친환경자동차, 광주형 일자리 정책을 변함없이 가져가야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메르켈이 슈뢰더의 정책을 업그레이드 시켜나가듯, 시민의 몫으로 정책 성과가 돌아갈 때까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강기정의 독일이야기〉는 정치인 강기정이 12년의 의정활동을 잠시 멈추고, 베를린자유대학교(Free University of Berlin)에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머물며 기록한 독일의 industry4.0, 에너지, 경제, 정치 현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총 10회로, 다음주부터는 매주 목요일자 8면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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