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시간속을 걷다 ] <11> 25년째 ‘노래하는 튀밥장수’ 김성기씨
2017년 07월 20일(목) 00:00
노래하며 짠짠! 인생 즐기며 뻥!

장성읍 영천리에 자리한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하는 튀밥’ 주인장 김성기씨가 튀밥 기계에 말린 우엉을 집어넣고 있다. 그는 ‘빤딱’거리는 튀는 복장을 하고 대중가요를 부르며 25년째 즐겁게 튀밥을 튀기고 있다.

일부러 장날에 맞춰 갔다. 4일과 9일에 열리는 장성읍 장날에 가면 가게앞에 손님이 길게 늘어설 걸로 생각했다. 쌀과 옥수수, 콩 등 이런저런 재료들이 담긴 깡통들이 이름표를 꽂은 채 줄줄이 차례를 기다리고…. 그런데 막상 가보니 기대와 달리 가게는 한산했다. 속담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만 공교로웠다.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하는 튀밥’ 주인장 김성기(79) 씨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가게 입구에서 ‘튀밥’이라 쓰인 낡은 입간판을 손보고 있었다. 연파랑 중절모를 눌러 쓰고 ‘빤딱’거리는 진파랑 상의와 황금색 조끼, 검정 바지 차림이었다. 그는 25년째 장성읍 영천리 시장통에서 ‘튀는’ 복장을 하고 즐겁게 노래하며, 튀밥을 튀기고 있다.



◇일년중 설 전날이 튀밥 집 대목=“7월부터 10월까지는 손님이 없어. 왜? 과일이 나오잖아. 설날 앞날이 가장 많아. 산자(유과) 하려고 한 사람이 쌀 40㎏을 튀겨 가. 설 지나고 나면 떡국 쑤고 남은 거 튀려고 3∼6월에 많이 와 괜찮아. 추석 때는 별로 안 튀겨.”

일년 중 가장 바쁜 날은 설 하루 전날이란다. 설을 쇠기 위해 유과 등을 만들려고 주민들이 이날 갖가지 재료를 들고 김씨 가게를 찾아온다. 가게 내부는 튀밥기계 2대가 자리하고 있다. 기계 옆에는 튀긴 재료를 받아내는 큼지막한 사각 틀이 자리하고 있다. 나무로 만든 낡은 돈 통이 기계앞에 놓여있다. 한번 튀는데 5000원이다.

“안녕하세요∼!”

마침 머리를 스카프로 감싼 중년 여성이 들어서자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음계 ‘솔’ 음성이다. 장날에 맞춰 머리를 하기 위해 진원면에서 왔다는 아주머니는 보자기를 풀어 얇게 썰어 말린 ‘대감자’(돼지감자)를 꺼낸다.

“기름 집에서 볶는 것보다 여그(여기)서 볶는 것이 꼬습고 맛나요.”

아주머니는 물 끓여먹을 용도로 ‘대감자’를 볶는다. 방앗간에서 하는 것보다 구수하고, 맛이 좋다고 한다.

“옛날에는 가마솥에 밥을 해서 먹었어. 볶아먹고. 여기는 (가마솥처럼) 온도가 들어가서 제대로 되거든. 먹어본 사람들은 방앗간에 안가.”

손님이 돌아가자 그는 LPG(액화석유가스)를 틀어 점화한 후 튀밥 기계를 예열한다. 여름에는 20∼30분, 겨울에는 40분∼1시간을 달궈야한다. 여름에는 가스, 겨울에는 석유를 사용한다. 잠시 후 예열이 끝났는지 재료를 동그란 깡통에 옮겨 담아 원구형 기계 안으로 집어넣는다. 모터와 연결된 고무링을 기계에 걸자 튀밥 기계가 절로 빙글빙글 돌아간다. 가게 한쪽에서 흘러나오는 뽕짝리듬에 맞춰 그가 어깨춤을 춘다.

◇재료에 따라 볶는 정도 달라=“재료를 보면 알아. 기계에 온도계 달려 있잖아. 온도계만 보고도 안 돼.”

재료에 따라 볶는 시간이 다르다. 기계에 딸린 온도계 수치는 35까지 표기돼있는데, 쌀은 8∼9, 옥수수는 11 정도에서 볶는다. 그런데 온도계에 의지하지 않고 25년간 쌓은 경험에서 나온 ‘감’으로 볶는다.

주민들이 갖고 오는 주재료는 쌀과 옥수수, 콩 외에도 해바라기씨, 무 말랭이, 호박 말랭이, 우엉, 돼지감자, 둥굴레 등 다양하다. 주문에 따라 하얗게, 중간(갈색), 까맣게로 볶는 정도를 조절해준다. 까맣게 볶아야 더 구수한 맛이 난다고 한다.

10여 분도 채되지 않아 그가 기계를 멈추고 고무링을 벗긴다. 그리고 튀밥 기계를 90도로 돌려 사각 틀에 입구를 맞춘 후 길죽한 쇠막대기 2개를 양손으로 힘껏 돌린다.

“뻥∼!” 경쾌하게 압축된 공기가 터져나오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동시에 구수한 향이 실내에 가득 풍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가져온 우엉과 돼지감자를 모두 튀겼다.

“가물 때 두 명 왔으니 다행이네. 돈은 돈은 밤낮 벌어도 부족하고, 일은 일은 해도 끝이 없어. 즐거움도 슬픔도 모두 본인이 만드는 거지. 남이 만들어 준게 아니다 그 말여.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가 만들고 즐겁게 생활을 해야지. 남이 그런다고 승질(성질) 써봤자 자기만 해로와. 항상 웃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야된다 이 말이야. 노래에 그것이 나와요. 나온가 안 나온가 확인해봐야 쓰겠네.”

그는 안쪽 구석에 있는 노래방 기계에 숫자를 입력한다. 곡명은 ‘가슴이 답답해서’.

◇노래하며 일하는 즐거운 인생=그가 노래에 ‘한’을 품게 된 것은 군대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1938년 전북 고창군 고수면 농촌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20대 중반 늦깎이로 입대해 강원도 동부전선 최전방에 배치됐다. 입대 초기에 고참들이 노래 ‘노’자도 모르는 그에게 노래를 시켰다. 그런데 그가 ‘산토끼’ 노래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하자 고참들은 곡괭이 자루로 ‘빠따’(몽둥이) 5대를 때렸단다.

제대 후 사회에 나와서도 노래 잘하고, 춤까지 잘 추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러다 친구 권유로 산악회에 가입해 회원들과 어울리며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취미로 부르며 즐기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직접 만든 앰프를 짊어지고 산에 가기도 했다. 10여 년 전에는 아예 가게 내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해 놓고 노래를 하며 일을 하고 있다. 달력 뒷면에 가요 입력번호와 곡명을 적어놓았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한 많은 대동강’과 ‘청춘을 돌려다오’.

김씨가 튀밥 가게를 연 때는 쉰다섯 살이던 1992년 무렵이다. 본래는 군 제대 후 문방구와 풀빵장사를 비롯해 함석 물받이 설치·수리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우연한 기회로 전업해 노점이 아닌 튀밥가게 문을 열었다. 처음 시작한 가게가 지하도 공사로 인해 뜯기며 지금 자리로 이전했다. 10여 년 전에는 튀밥 기계 3대에 직원 2명을 두고 하루 50여 만 원을 벌던 호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계 2대를 갖고 있지만 1대만 주로 가동하고, 혼자서 일한다.

가게를 열었던 초기에는 평범하게 입고 일했지만, 10여 년 전부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지금의 복장으로 바꿔입었다. 덕분에 TV 프로그램에도 여러 차례 소개돼 장성읍 시장통 명물로 널리 알려졌다. 여든 해 세상살이를 하면서 힘겨운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노래하고 ‘뻥∼’ 튀기며 즐거운 맘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그늘은 있다. 28살에 중매로 결혼해 3남매(2남1녀)를 낳고 한평생을 같이 해온 아내가 5년 전부터 무릎이 아파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을 때, 즐거울 때, 건강할 때, 있을 때 잘하란 말여. 인생 보쇼. 어저께(어제)까지 팔딱팔딱 뛰고 한 사람이 암(아무)것도 모르고 가버리잖아요. 노래가 있어요. ‘있을 때 잘해 헛나발 불지 말고. 짜자잔잔 짠짠!’”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장성=김용호기자 yongho@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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