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탄생 100주년] <2> 광양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
어둠에 묻힐 뻔한 별, 밤하늘의 찬란한 별 되다
2017년 05월 01일(월) 00:00

윤동주 유고 시집을 보관했던 광양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

그 포구에 봄볕이 들이친다. 포구는 더없이 아늑하고 따스하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세상과 가장 가까이 이웃하면서, 가장 낮고 쓸쓸한 곳에서 피어나는 법. 비록 만선의 고깃배는 보이지 않지만, 눈앞의 포구는 무수한 생명을 품고 있을 것이다. 세상살이의 시난고난한 이야기와 저잣거리의 삽상한 흥취를 머금고 말이다.

광양 망덕포구. 적당히 데워진 봄볕이 강물 위로 들이친다. 잔물결에 일렁이는 수면은 더없이 정밀하고 고적하다. 물비늘이 아름다운 섬진강 어귀마다 그렇게 봄은 영글어 간다. 21세기 신 해양시대를 열어갈 광양의 미래를 보는 듯 상서로운 기운이 감돈다. 광양의 대표적인 산, 구봉산에서 보는 지세도 동일한 느낌을 준다. 붉은 배가 대양을 향해 출항하는 홍선출해(紅船出海) 형국은 필경 오늘의 번창을 예감했던 모양이다.

망덕포구는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이 550리를 내달려 비로소 몸을 푸는 곳이다. 수줍은 섬진강은 그렇게 품이 넓은 남해를 만나 포구 곳곳에 다양한 생명들을 부려놓았다. 인근에서 전어, 굴이 많이 나는 것은 포구가 지닌 생래적인 포용성과 무관치 않다.

강과 인접한 바다에서 남자들은 파도를 다스리며 그물을 당겼을 터다. 팔딱거리며 은색의 배를 드러내는 전어는 뭇 사내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노도를 거스르며 그물을 당기는 힘은 남성성의 극치다. 매년 가을이면 망덕포구에서 전어축제가 열리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망덕포구는, 창조란 융합과 섞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명징한 곳이다. 망덕포구를 가벼이 볼 수 없는 이유는 비단 그뿐이 아니다. 창조와 생명으로 전이되는 이곳은 한국문학사에 길이 빛나는 상징적 공간이다. 문학은 창조와 생명, 융합과 섞임을 기반으로 하지 않던가.

무엇보다, 망덕포구에 오면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 아니 기억해야 할 남자들의 우정이 있다. 시인 윤동주(1917∼1945)와 국문학자 정병욱(1922∼1985) 서울대 교수. 이들의 지고한 문우의 정은 빛의 도시 광양(光陽)을 해처럼 빛나게 한다.

물론 두 사람의 만남은 문학이 매개가 됐다. 망덕포구에 소재한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341호)은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가 보관돼 있던 곳이다. 정병욱은 1940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선배인 윤동주를 만났다. 평소 두 사람은 문학을 이야기하며 각별한 우정을 쌓는다.

얼마 후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일설에 따르면 출국에 앞서 시집을 펴낼 계획이었으나 지도교수인 이양하 선생 만류로 뜻을 접는다. 일제의 탄압을 우려했던 때문이다. 윤동주는 필사본 3권을 만들어 1권은 이양하 교수에게, 1권은 후배 정병욱에게, 마지막 1권은 일본으로 가져간다.

그러나 윤동주는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 재학 중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 그 사이 정병욱도 일본으로 징용돼 떠나게 된다. 그는 징집 직전 망덕포구 고향집에 들러 어머니에게 윤동주의 시 필사본을 맡긴다. 해방과 함께 귀국한 정병욱은 윤동주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고, 어머니가 고향집 마룻바닥 아래에 묻은 항아리를 떠올린다. 이 필사본에는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윤동주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마침내 1948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나오기에 이른다.

정병욱 가옥을 찬찬히 둘러본다. 고적하고 쓸쓸해 보이는 가옥에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불현듯 가옥 어딘가에서 누군가 걸어 나올 것만 같다. 가만히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 교수의 이름을 불러본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그의 이름들은 밤하늘의 별이 되었을 것만 같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헤는 밤’중에서)

아마 정병욱은 섬진강 망덕 포구를 바라보며 윤동주의 ‘별헤는 밤’을 수없이 외웠을 것이다. 맑은 섬진강과 남해의 푸른 물, 광양의 밝은 빛이 들이치는 이곳은 별을 보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어쩌면 정병욱이 허공에 대고 읊었을 시어들은 섬진강 물을 따라 푸른 남해로 흘러갔을 것이다. 윤동주의 시혼도 이곳 어딘가를 떠돌며 오매불망 별이 된 벗들을 부르고 있을지 모른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1920년대 지어진 정병욱 가옥에는 문학적, 건축사적, 역사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 최상종 광양시학예연구사는 “1925년 무렵에 지어진 가옥이라 근대적 가치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윤동주 유고시집이 보관돼 있던 장소성의 가치가 보다 주목을 받는다 ”고 평했다.

나라를 잃어버린 시대, 문학을 사랑했던 두 남자의 우정은 그렇게 시대를 넘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다. 이들의 각별한 우의가 있어 망덕포구는 아름답다. 더없이 광양이 빛난다.

광양시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정병욱 가옥을 일부 정비하고 전시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정비가 끝난 후에는 이곳에 윤동주 관련 원고 영인본과 사진·유품 등을 비롯해 정병욱 선생의 미공개 자료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천창우 광양윤동주문학보존회 사무총장은 “광양은 윤동주 문학의 탄생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문학사적 의미와 가치가 남다른 곳”이라며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 국제포럼과 문학제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전의 정병욱은 자신의 아호를 백영(白影)이라 불렀다. 그는 윤동주가 백의민족(白衣民族)을 상정해 그리던 ‘흰 그림자’를 오롯이 기억하기 원했다.

강물은 봄날의 햇볕을 싣고 먼 바다로 내달린다. 섬진강의 끝자락 망덕포구에서 아름다운 두 남자 윤동주와 정병욱의 별처럼 빛나는 우정을 생각한다.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

〈사진=광주일보DB·광양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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