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호남지] 전라도 1000년 호남을 바로 세우자 <1>
2017년 01월 02일(월) 00:00
호남 문화원류 재조명 … 천년 돌아보고 미래 문 연다
호남은 예로부터 예향(藝鄕) 문향(文鄕) 의향(義鄕)으로 유명했다. 혹자는 이를 ‘3고(高)’라고 했다. 예술과 문학의 향기, 의로움의 기개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예향의 면모는 설화와 전설, 민담에서부터 판소리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원형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섬진강을 중심으로 판소리의 양대 산맥인 서편제와 동편제가 탄생해 수많은 명창들을 배출했다.

호남 화맥도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소치 허련에서 시작한 남종화는 의재 허백련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200년간 독특한 화풍을 일궜고 이이남을 필두로 한 미디어아트가 이제 호남 화맥을 이어받아 국제사회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서 나눈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의 우정은 차문화의 싹을 틔웠다.

면면히 이어져온 걸출한 문인학자들은 문향으로서 호남의 위상을 말해준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의 사단칠정 논쟁으로 ‘사상 로맨스’를 이끈 고봉 기대승은 월봉서원에서 ‘드라마 판타지아’라는 연극으로 되살아났다.

송순 면앙정가와 정철 관동별곡의 가사문학은 식영정과 소쇄원 등 담양 정원문화를 낳았다. 특히 송강 정철은 해남의 고산 윤선도와 함께 조선후기 시가사상의 쌍벽을 이뤄 후배 문인들에게 DNA로 전해졌다. 천재이자 풍류시인인 백호 임제는 강진의 영랑 김윤식, 광주의 용아 박용철, 김현승 시인으로 이어지는 호남 시맥을 일궜다.

호남 문맥은 지역별로 독특한 색깔로 주목받고 있다. 장흥의 풍성한 바다는 이청준-송기숙-한승원으로 이어지는 소설가 벨트를 형성했고 순천출신의 조정래는 소설 태백산맥으로 전남 동부권에 태백산맥 순례 관광루트를 만들었다. 해남은 김남주, 고정희, 황지우로 이어지는 저항시인의 고향이 됐고 목포는 박화강, 김지하, 김현 등 소설-시-평론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인물을 낳았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호남민들의 정신은 호남에 의향이란 명예를 안겼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호남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민주와 인권이 탄압을 받을때마다 분연히 일어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동학농민운동이 그랬고 일제시대 광주학생운동이 그랬다.

5.18민주화운동은 독재에 저항한 민주정신의 모델로 1987년 6월 항쟁과 가깝게는 지난해 대통령 탄핵심판을 이끈 촛불집회의 밑바탕이 됐다. 나아가 동남아를 중심으로 지구촌에 ‘민주·인권’이란 광주정신을 심고 있다.

하지만 호남은 ‘3고’라는 훌륭한 자산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창조하는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호남은 때마침 전라도라는 정도(定道) 천년을 앞두고 있다. 정도 천년을 계기로 호남의 자산을 조사·수집·연구·보존한후 스토리텔링을 통해 고부가가치 문화콘텐츠로 재창조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학 관련 조사 기관에 따르면 호남권에 있는 고문서, 서화 등 한국학 관련 자료는 52만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방대한 자료가 훼손되거나 도난 위기에 처해있고 체계적으로 분류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광주시와 전남도는 가칭 한국학호남진흥원을 올해 안에 설립해 호남의 자산을 후세들에게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3억원씩을 출자하고 매년 10억원씩을 운영비로 지원한다는 방침아래 행정자치부와 설립을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이 출범하면 지역의 정체성 확립은 물론 문화콘텐츠 개발로 인한 고용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남도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남도문예 르네상스 프로젝트도 호남의 전통 문화예술자원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시대적 조류에 맞춰 재창조함으로써 지역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

전남도는 전통정원 복원과 종가문화 활성화, 수묵화비엔날레 등 4개 선도사업을 시작으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정보를 담은 아카이브 구축, 남도 문학벨트 조성, 프리미엄 관광상품 개발 등 핵심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에 광주일보는 전라도 정도 천년을 앞두고 호남의 미래 천년의 자산이 되는 문화 원류를 새롭게 조명하고 탐구하는 장기 시리즈를 마련했다. ‘신호남지(新湖南誌)’라는 이름으로 매주 화요일 독자들을 찾아가는 시리즈는 대학교수, 문인, 역사학자 등 내로라하는 유명 필진들이 민속·지리·사상·종교·여행·문학·역사·미술·음식 등 광범위한 주제를 흥미롭고 명쾌한 논리로 전개한다.



/장필수기자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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