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전남의 리아스식 해안]<2>누구를 위한 간척사업인가- 해남·영암 간척지
2016년 09월 12일(월) 00:00 가가
농업용 간척지라더니 … 군사기지·레저사업 ‘용도 변경’


9일 영암군 삼호읍 호텔현대목포 팔각정에서 내려다본 해남·영암간척지. 영암호 왼쪽 영암삼포지구(622ha) 간척지는 F1 경기장과 부대시설로 쓰였고 그 뒤 영암삼호지구(600ha) 간척지도 J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오는 2025년까지 골프장, 리조트, 승마장 등 휴양레저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호수 맞은편 영암구성지구(1594ha) 간척지도 J프로젝트 부지로 편입돼 골프장, 워터파크, 해양스포츠 센터 등이 건립된다. 〈사진제공=해남군〉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 주민 박성일(50)씨는 30년 넘게 지나버린 중학생 시절 마을 풍경을 잊지 못한다.
남쪽바다를 향해 쭉 뻗어나온 반도에 자리 잡은 그의 마을은 양쪽에 바다를 품고 있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구불구불한 리아스식 해안을 삼면으로 끼고 있는 어촌 마을이었다. 해가 지면 노을은 마을 양 옆의 바다로 내려앉았고 엎드리면 코닿을 곳에 펼쳐진 갯벌과 바다는 끝도 없이 먹을거리를 토해냈다. 무안낙지가 울고 갈 낙지의 원조 ‘산이 낙지’, 해태(김), 미역, 종을 셀 수 없을 정도의 바다 게, 잡아도 줄어들지 모르는 물고기….
바다가 주는 끝모를 장점 중에서도 박씨와 마을사람들은 바다의 공평함이 특히 좋았다. 부잣집이건 가난한 집이건, 나이가 많든 적든, 바다와 가깝던 떨어져 있든, 바다와 갯벌은 마을사람들에게 공평했다. 먼저 집을 나서 부지런히 움직이면 꼭 그만큼 되돌려줬다. 바다는 마을사람들을 차별하지도, 배신하지도 않았다.
그가 막 20대에 접어들던 지난 1985년 굉음과 함께 마을에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등 중장비가 나타났다. 일꾼들은 구성리(상공리 옆)에서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옛 황도)까지 둑을 쌓아 바다를 호수로 만들고 갯벌은 간척해 농지로 바꾼다는 정부의 방침을 앞세워 밀어붙였다. 마을 곳곳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처음엔 한목소리로 정부에 맞섰지만 곧 공사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패가 나뉘었다. 그러곤 정부의 한마디에 모두 잠잠해졌다.
◇평온했던 마을에 방조제가 들어섰다=“정부가 도장 찍어주면 한 집당 9000평씩 준다고 했응께 찍어줬지.”
지난 9일 산이면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제 손으로 간척동의서에 동의서를 써준 날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정부는 바다를 터잡아 살고 있던 주민들이 간척사업을 격렬히 반대하자 “사업이 완료되면 9000평씩 주겠다”며 동의를 구한 후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1996년 영암방조제가 완공되고 갯벌과 바다를 매워 2000ha가 넘는 간척지가 조성됐지만 주민들에게 돌아온 땅은 없었다. 농어촌공사 측은 “간척지 무상 분배와 관련한 문서도 없고 워낙 오래된 일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상공리에 사는 박동철(85)·서형태(85)씨는 “정부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는디. 공짜로 받은 땅도 없지만, 설사 무상으로 간척지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제는 저 둑(영암호 방조제)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한국농어촌공사에서 평당 연 3800원에 6000평을 빌려 간척지 농사를 짓는 장관종(56)씨 마저도 바다를 육지로 만든 영암방조제를 걷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년 농사를 지어봤자 쌀 300가마(40㎏) 나온다. 농약값·모종값·인건비·간척지 임대료를 제하면 손에 남는 건 500만원도 안 된다. 마을이 육지로 변하지 않고 바다와 갯벌이 그대로였다면 이 돈보다는 더 벌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업용 간척지가 J프로젝트, 군사기지로=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건 고향 바다를 매워 만든 간척지가 본래의 목적대로 쓰이지 않는 곳이 태반이라는 점이다.
국토를 넓혀 식량자급에 기여하겠다는 정부와 한국농어촌공사는 산이면 대진리 앞바다를 매워 만든 간척지 285ha(축구장 400여개 면적)를 해군에 팔아넘겼다. 농사를 지어야할 땅에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통신 안테나 두어 개가 서있을 뿐 온통 황무지로 변했다.
바로 옆 간척지(산이2-2공구) 727ha는 이곳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한 영농조합법인에게 임대돼 무엇이 재배되는지도 모르겠다는 게 마을 사람들 설명이다.
상공리와 구성리, 부동리 앞바다를 매워 조성된 간척지(구성지구) 1594ha는 수년간 놀리더니 결국 지난 2012년 농업법인도 아닌 외지 개발업자들 손에 ㎡당 6400원에 넘어갔다.
J프로젝트(관광레저 기업도시)라는 이름 아래 구성지구 간척지를 농어촌공사로부터 사들인 개발업자들은 외부 자본을 끌어들여 오는 2025년까지 골프장, 요트 시설, 워터파크, 해양스포츠 센터 주택, 숙박시설 등을 건설한다는 구상을 세워둔 상태다.
영암호 건너편 삼포·삼호지구 간척지도 농업용으로 쓰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삼포지구 간척지(622ha)는 전남개발공사와 코리아오토밸리오퍼레이션(KAVO·F1 대회 국내 운영법인)이 농어촌공사로부터 빌려 F1 경기장과 부대시설을 건립했다가 지난 2011년 부지를 아예 매입했다. 삼포지구 간척지 역시 J프로젝트 대상지로 다양한 기업이 유치돼야 하지만 F1경기장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기업도시도, 농업용 간척지도 아닌 애물단지 신세라는 게 주민들 얘기다.
인접한 삼호지구 간척지(600ha)도 J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리조트, 승마장, 골프장, 마리나 등 휴양레저시설과 주택, 숙박시설, 에너지 산업단지 등이 들어선다.
◇주민들 “첨부터 바다를 매우지 말았어야했다”=2008년 준공된 해남 산이 2-2공구 간척지에는 쌀 대신 가축 사료로 만들 풀이 자라고 있다. 애초 정부의 간척사업 목적과 달리 쌀이 초과 생산되다 보니 한국농어촌공사가 713ha에 이르는 간척지를 농업회사에 임대해주면서 ‘벼외 작물 재배를 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였기 때문이다. 축구장 1000여개 넓이의 이 간척지에선 사료용 작물과 갯잔디, 해바라기 따위가 ‘재배’되고 있다.
바다를 매워 농사 지을 땅을 주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주민들 삶의 터전과 맞바꿔 만든 간척지 대부분이 사료용 작물 재배지, 휴양레저형 기업도시 예정부지, 군부대 부지로 전락한 것이다.
주민 상당수는 방조제 조성 이후 바닷물 왕래가 끊기고 인공호수(영암호)와 간척지가 만들어진 이후 해남의 기후마저 변화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밀물과 썰물이 오가면서 여름이면 주변 열기를 흡수해 시원했고 겨울에도 내륙의 냉기를 바닷물이 빨아들여 먼바다로 밀고 가면서 추위가 덜했다는 게 마을 노인들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주민들 입장에선 삶의 터전인 바다와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간척지 대부분이 자신들에게 이롭게 쓰이지도 자신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상공리 주민 박성일씨는 “이 모든 게 공무원들, 토건업자들 배를 불리기 위한 짓이었다. 봐라. 쌀 생산을 증대한다며 간척해놓고 막상 사업이 완료되니 쌀이 초과생산 된다며 놀리다가 그 땅을 군부대에 팔고, 외부 자본에 팔았지 않느냐”면서 “바다라는 마르지 않는 터전을 주민들에게서 빼앗아 방조제를 쌓고 갯벌을 매립해 간척해놓고 정작 우리 사회가 얻은 것 중 제대로 된 게 하나라도 있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능성이 희박해보이지만 설사 J프로젝트가 성공하더라도 그 이익은 개발업자들에게 돌아가고 마을 사람들이 쥘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면서 “늦었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어주는 바다와 갯벌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간척지 대부분이 놀고 있거나 주민 소유가 아니어서 둑을 허물기 위한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내기 쉽다”고 말했다.
/해남·영암=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해남=박희석기자 dia@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취재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남쪽바다를 향해 쭉 뻗어나온 반도에 자리 잡은 그의 마을은 양쪽에 바다를 품고 있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구불구불한 리아스식 해안을 삼면으로 끼고 있는 어촌 마을이었다. 해가 지면 노을은 마을 양 옆의 바다로 내려앉았고 엎드리면 코닿을 곳에 펼쳐진 갯벌과 바다는 끝도 없이 먹을거리를 토해냈다. 무안낙지가 울고 갈 낙지의 원조 ‘산이 낙지’, 해태(김), 미역, 종을 셀 수 없을 정도의 바다 게, 잡아도 줄어들지 모르는 물고기….
지난 9일 산이면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제 손으로 간척동의서에 동의서를 써준 날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정부는 바다를 터잡아 살고 있던 주민들이 간척사업을 격렬히 반대하자 “사업이 완료되면 9000평씩 주겠다”며 동의를 구한 후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1996년 영암방조제가 완공되고 갯벌과 바다를 매워 2000ha가 넘는 간척지가 조성됐지만 주민들에게 돌아온 땅은 없었다. 농어촌공사 측은 “간척지 무상 분배와 관련한 문서도 없고 워낙 오래된 일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상공리에 사는 박동철(85)·서형태(85)씨는 “정부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는디. 공짜로 받은 땅도 없지만, 설사 무상으로 간척지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제는 저 둑(영암호 방조제)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한국농어촌공사에서 평당 연 3800원에 6000평을 빌려 간척지 농사를 짓는 장관종(56)씨 마저도 바다를 육지로 만든 영암방조제를 걷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년 농사를 지어봤자 쌀 300가마(40㎏) 나온다. 농약값·모종값·인건비·간척지 임대료를 제하면 손에 남는 건 500만원도 안 된다. 마을이 육지로 변하지 않고 바다와 갯벌이 그대로였다면 이 돈보다는 더 벌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업용 간척지가 J프로젝트, 군사기지로=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건 고향 바다를 매워 만든 간척지가 본래의 목적대로 쓰이지 않는 곳이 태반이라는 점이다.
국토를 넓혀 식량자급에 기여하겠다는 정부와 한국농어촌공사는 산이면 대진리 앞바다를 매워 만든 간척지 285ha(축구장 400여개 면적)를 해군에 팔아넘겼다. 농사를 지어야할 땅에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통신 안테나 두어 개가 서있을 뿐 온통 황무지로 변했다.
바로 옆 간척지(산이2-2공구) 727ha는 이곳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한 영농조합법인에게 임대돼 무엇이 재배되는지도 모르겠다는 게 마을 사람들 설명이다.
상공리와 구성리, 부동리 앞바다를 매워 조성된 간척지(구성지구) 1594ha는 수년간 놀리더니 결국 지난 2012년 농업법인도 아닌 외지 개발업자들 손에 ㎡당 6400원에 넘어갔다.
J프로젝트(관광레저 기업도시)라는 이름 아래 구성지구 간척지를 농어촌공사로부터 사들인 개발업자들은 외부 자본을 끌어들여 오는 2025년까지 골프장, 요트 시설, 워터파크, 해양스포츠 센터 주택, 숙박시설 등을 건설한다는 구상을 세워둔 상태다.
영암호 건너편 삼포·삼호지구 간척지도 농업용으로 쓰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삼포지구 간척지(622ha)는 전남개발공사와 코리아오토밸리오퍼레이션(KAVO·F1 대회 국내 운영법인)이 농어촌공사로부터 빌려 F1 경기장과 부대시설을 건립했다가 지난 2011년 부지를 아예 매입했다. 삼포지구 간척지 역시 J프로젝트 대상지로 다양한 기업이 유치돼야 하지만 F1경기장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기업도시도, 농업용 간척지도 아닌 애물단지 신세라는 게 주민들 얘기다.
인접한 삼호지구 간척지(600ha)도 J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리조트, 승마장, 골프장, 마리나 등 휴양레저시설과 주택, 숙박시설, 에너지 산업단지 등이 들어선다.
◇주민들 “첨부터 바다를 매우지 말았어야했다”=2008년 준공된 해남 산이 2-2공구 간척지에는 쌀 대신 가축 사료로 만들 풀이 자라고 있다. 애초 정부의 간척사업 목적과 달리 쌀이 초과 생산되다 보니 한국농어촌공사가 713ha에 이르는 간척지를 농업회사에 임대해주면서 ‘벼외 작물 재배를 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였기 때문이다. 축구장 1000여개 넓이의 이 간척지에선 사료용 작물과 갯잔디, 해바라기 따위가 ‘재배’되고 있다.
바다를 매워 농사 지을 땅을 주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주민들 삶의 터전과 맞바꿔 만든 간척지 대부분이 사료용 작물 재배지, 휴양레저형 기업도시 예정부지, 군부대 부지로 전락한 것이다.
주민 상당수는 방조제 조성 이후 바닷물 왕래가 끊기고 인공호수(영암호)와 간척지가 만들어진 이후 해남의 기후마저 변화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밀물과 썰물이 오가면서 여름이면 주변 열기를 흡수해 시원했고 겨울에도 내륙의 냉기를 바닷물이 빨아들여 먼바다로 밀고 가면서 추위가 덜했다는 게 마을 노인들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주민들 입장에선 삶의 터전인 바다와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간척지 대부분이 자신들에게 이롭게 쓰이지도 자신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상공리 주민 박성일씨는 “이 모든 게 공무원들, 토건업자들 배를 불리기 위한 짓이었다. 봐라. 쌀 생산을 증대한다며 간척해놓고 막상 사업이 완료되니 쌀이 초과생산 된다며 놀리다가 그 땅을 군부대에 팔고, 외부 자본에 팔았지 않느냐”면서 “바다라는 마르지 않는 터전을 주민들에게서 빼앗아 방조제를 쌓고 갯벌을 매립해 간척해놓고 정작 우리 사회가 얻은 것 중 제대로 된 게 하나라도 있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능성이 희박해보이지만 설사 J프로젝트가 성공하더라도 그 이익은 개발업자들에게 돌아가고 마을 사람들이 쥘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면서 “늦었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어주는 바다와 갯벌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간척지 대부분이 놀고 있거나 주민 소유가 아니어서 둑을 허물기 위한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내기 쉽다”고 말했다.
/해남·영암=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해남=박희석기자 dia@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취재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