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민족·다른 종교, 강을 품은 바다처럼 어울린다
[8] 차이를 포용하는 이라눈족
2015년 02월 23일(월) 00:00

말레이시아 소수민족 이라눈족이 사는 람파이얀 마을 해변에는 뛰어노는 아이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에 사는 원주민과 이주민은 사용하는 언어도 믿는 종교도 다르지만 차이를 포용하며 평화롭게 공존한다.

동중국해로 흘러가는 가왕가왕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람파이얀 마을. 이곳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소수민족인 이라눈족이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바다’마을이란 이름처럼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민물 게와 생선 등 풍부한 어족 자원이 잡힌다. 람파이얀 마을은 매일 새벽 5시에 생선 시장이 열린다. 마을을 거닐다 보면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시장에 팔기 위해 온 이주민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고유한 언어를 쓰는 이라눈 원주민과 말레이어를 쓰는 이주민 사이 언어는 다르지만 서로 서스름 없이 지내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람파이얀 마을에는 50여 가구가 사는데 주민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는다. 소를 신성하게 여기는 종교적인 이유로 집 근처는 물론 차도를 자유롭게 거니는 소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방목하는 소를 다른 사람이 훔쳐가지 않도록 묶어놔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이에게 ‘남의 소를 왜 훔쳐가느냐?’고 되물으며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주민들. 손님을 대하는 인심도 후덕했다.

이라눈족 전통에 따라 의복을 생산하며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반디안 술라이만(Pandian Sulaiman 여·63)씨는 전통문화와 의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기에 앞서 푸짐한 전통 음식으로 손님을 맞았다. 직접 잡은 재료로 만든 생선구이와 노란색 코코넛 소스를 듬뿍 얹은 참치 샐러드, 갓 구운 빵과 바나나 튀김까지 이색적이지만 푸짐한 인심을 가득 담은 요리를 보며 한 그릇을 금방 비웠다. 잠시 후 들어간 방에는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검은색까지 방 안을 가득 메운 원색 직물이 방문객의 눈을 사로 잡았다. 이들은 생활 속에서 전통을 체계적으로 지키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공무원과 회사원, 상인과 어부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데 많은 여성들이 전통 직물 생산을 전업으로 하고 있었다. 덕분에 전통직물 제작경력이 수십 년 이상인 여성이 적지 않다. 이들이 만든 화려한 전통 직물은 각지로 팔려나간다. 또한 보유한 기술을 다음 세대에 알리고 보급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반디안 씨의 손녀이자 코타키나발루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티까(Atikah 여·20)씨. 그녀는 고향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집에 살지만 한달에 두 번 이상 이곳에 와서 직물 짜는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히잡을 쓴 채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는 그녀는 한국 문화에도 무척 관심이 많았다. 그러면서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가진 포용력이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히잡에 감춰진 작은 얼굴에 당찬 표정을 지닌 그녀는 전통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드러냈다. 다른 민족과 종교는 물론 한국 드라마와 음악까지 서로 다른 문화를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문화, 즉 전통에 대한 믿음이라는 점도 설명했다.

“람파이얀 마을에는 대부분 이슬람을 믿는 이라눈족이 살지만 그렇지 않은 주민도 있어요. 자연스레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결혼해서 살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차이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게 된 거 같아요. 자신이 믿는 종교가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이 믿는 신도 존중해 주는 게 맞지 않나요? 의식주 모두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이런 유연함이 전통을 지키는 데에도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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