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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some)에 관한 단상
양 동 옥 성교육전문가ㆍ심리학박사

2014. 08.19. 00:00:00

요즘 ‘썸 타다’, ‘썸 타고 싶다’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너.’ 운율을 맞춘 언어의 유희처럼 들리는 이 노래 가사 안에 관계의 혼란이 내포된 썸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썸(some)은 영어 단어 썸씽(something)의 준말이다. 어떤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을 보일 때 주위에서 흔히 ‘너희 썸씽 있지?’라고 묻는다. 그 썸씽이 무엇인지는 단어의 뜻처럼 참 모호한데, 요즘 일부 젊은이들은 그 관계의 모호함, 애매함을 즐긴다.
썸은 누군가에게 호감과 관심은 있는데 사귀는 것이 아닌 상태에서 그 호감과 관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말한다. 그 단어에 불꽃이 일어나는 ‘타다’라는 동사를 결합하여 호감이나 관심이 가는 이성과 잘 되어간다는 것을 표현할 때 ‘썸 탄다’고 하며, 썸을 타고 있는 남녀를 ‘썸남썸녀’라고 부른다. 만남의 시작을 호감, 그 완성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과 사귀기로 규정한다면, 썸은 호감과 고백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즉 사랑이 시작되기 전 두근대는 설렘이 있는 낭만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만남은 상대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것과 같다. 내민 손을 잡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며 따뜻한 온기를 통해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흔한 우리네 사랑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점차 사랑을 느끼고, 함께 하고 싶다는 고백과 함께 상대에게 책임감을 갖고 헌신하는 단계를 밟는다. 하지만 썸은 이러한 단계보다도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 감정을 고착한다. 즉 낭만적 상황만을 원하는 것이다.
‘사귀자 그 얘기 대기, 달콤한 말 눈빛 터치 그런 게 재미’라는 노랫말처럼, 썸은 관계가 아닌 상황에 몰두한다. 장기적 관계는 설렘의 감정을 담보하지 못하지만, 상대방과의 친밀감, 배려, 갈등, 조율, 책임감 등이 어우러지며 만남 초기의 가슴 설렘은 자연스럽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애착으로 변화한다. 썸은 누군가와 이러한 깊은 정서적 관계보다는 설렘이라는 묘한 긴장 상황에 집중하기 때문에 만남이 가볍고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한 사람에 몰입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후보군을 만들며 문어발식 만남을 이어가기도 한다.
표면상으로 썸이라는 신조어가 터치와 즉각적인 시각적 변화를 가져다주는 스마트폰에 길든 젊은이들의 연애 아닌 연애 방식을 대변하는 것 같지만, 그 내면에는 이 사회에 상처받은 젊은이들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는 듯하다. 흔히 요즘 젊은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고 해서 ‘3포 세대’라 불린다. 사회적으로 경제력 자립 시기가 지연되면서 부모로부터 주거와 가사 지원을 받는 성인 캥거루족이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와 사귀는 것은 사치이며, 혹 사귄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만남이 불안정한 관계가 될 것이 불 보듯 훤하기에 사귀자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또 사귀자고 말했을 때 상대가 거절하게 되면 자괴감에 빠져 상처받기에 문간에 한쪽 발만 얹어놓고 언제든지 뺄 수 있는 자기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만남에 적정선의 투자를 하며 그 만남이 와해되더라도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썸 전략을 이용한다. 호감 가는 상대에게 최소한의 관심을 표현하고 반응이 없으면 곧바로 포기하며, 상대가 반응하면 둘 사이의 연애 감정은 충분히 느끼되 관계를 규정하지 않고 서로 간의 책임이나 의무를 느끼지 않는 사이를 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과 썸을 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과 썸을 타도 상대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치고 빠지고 그 경계가 매우 유연하여 자유로운 만남을 보이지만 감정놀음에 치중할 뿐 깊은 정서적 교류를 회피하는 이들의 모습이 슬퍼 보이는 건 왜일까.
썸 타는 사이에는 설렘과 같은 낭만적인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규정되지 않은 관계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 관계를 정의 내리려는 욕망과 관계를 정의 내리지 못하는 갈등이 공존하며 그 상황에서 상처받는 것 역시 썸을 타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책임감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떠다니는 위태로운 나뭇잎처럼 가벼운 모습이다. 진정한 관계의 시작은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서부터이다. 썸, 새로운 시대 연애 방식이라는 포장지를 덮지만, 상처받는 것의 두려움에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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