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군공항, 광주형 실리콘밸리로 - 손승광 동신대 명예교수, (사)광주전남지역혁신연구회 공동대표
2025년 12월 29일(월) 00:00
광주 군공항과 민간공항의 무안공항 통합 이전에 합의가 이뤄졌다. 정부는 국가주도 사업으로 무안공항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국가산단 조성 계획을 제시하며 공항 중심의 새로운 발전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 차원의 무안공항에 대한 지원과 별개로, 광주 군공항 종전부지가 이전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은 근본적인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재원 마련 방식이 자칫 주거·상업시설 중심 개발로 흐를 경우 이 땅이 광주와 호남의 미래를 담아낼 전략적 공간이 아니라 단기 개발이익에 종속된 부동산 사업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종전부지 8.2㎢, 248만 평은 국내 대도시 한복판에서 다시 오기 힘든 ‘한 번뿐인 기회’다. 이 거대한 땅이 미래산업의 그릇이 될지, 아니면 단기 수익 논리에 휩쓸릴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발의 속도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전략적 판단이다.

첫째, 전략의 출발점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다. 군공항 이전 비용이라는 압박 속에서 개발은 쉽게 주거와 상업 비중 확대로 흐른다. 그러나 미래산업을 이야기한다면 가장 먼저 토지이용의 총량 원칙을 확정해야 한다. 미래산업과 연구개발, 실증과 업무 기능을 중심에 두고 공공시설과 녹지, 주거와 상업, 기반·교통 기능의 상·하한선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이 총량 원칙은 향후 세부 계획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며, 재원 마련을 명분으로 주거 기능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된다.

둘째, 재원 모델은 분양 중심에서 운영 수익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종전부지는 ‘기부 대 양여’ 구조속에서 단기 재정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토지 매각과 분양에 의존하면 주거·상업 쏠림은 불가피하다. 대안은 장기 임대, 지분 참여, 공공·민간 공동 운영을 결합해 “도시를 파는 방식”이 아니라 “도시를 운영해 수익을 만드는 방식”으로 사고를 전환하는 것이다. 산업단지 역시 분양을 통한 자산 회수가 아니라 기업 유치를 통해 고용과 생산, 지역 파급효과를 창출하는 구조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 미래산업 전략은 ‘산업단지’가 아니라 생태계로 설계돼야 한다. 전남은 RE100을 기반으로 에너지·데이터 기반 시설을 축적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으며, 광주는 AI와 연구개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양 지역이 광역적으로 연계된다면 광주는 AI 연구·응용 연구·개발, 바이오·의료, 문화예술 등 기반 산업을 중심으로 상호 보완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군공항 부지 활용계획은 이들의 핵심 산업이 근간이 되고 충분한 녹지를 확보한 스마트도시, 살아있는 실험실 등을 큰 틀에서 조성하도록 한다. 토지이용도 부분적으로 혼합용도, 특히 고밀도 건축의 경우에 상업이 아니라 복합도시계획과 용도를 지향하는 유연한 계획이 필요하다.

넷째, 혁신산업의 앵커 기능은 계획의 마지막이 아니라 출발점이어야 한다. 토지이용계획을 세운 뒤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방식은 성공하기 어렵다. 공용 컴퓨팅과 장비를 공유하는 AI 기반 시설 허브, 임상·시험·파일럿을 아우르는 바이오 실증 플랫폼, 스케일업 제조센터, 도시 전역과 연동되는 데이터·규제 운영센터와 같은 기능 중심의 앵커를 먼저 확정하고, 도로·전력·통신·열원 등 기반 시설 투자도 집중해야 초기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성과를 단계별로 만들어야 한다. 기존 시설을 활용한 임시 혁신캠퍼스를 조성해 창업 초기기업과 연구 실험실을 먼저 채우고 ‘빈 땅의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후 산업·실증 기능을 확장하고 장기적으로는 일자리·주거·문화가 자립적으로 순환 하는 도시 운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광주의 미래산업 전략을 실물로 구현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지금 광주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구호가 아니다. 토지이용 총량 원칙, 앵커시설의 선-확정, 실증 중심 산업 설계, 운영형 재원 모델이라는 몇 가지 결정이다. 종전부지 248만 평은 광주에 던져진 거대한 질문이며, 그 답은 단기 이익이 아닌 미래를 향한 원칙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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