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기승에 안절부절…새벽 3시부터 아동병원 오픈런
2025년 11월 11일(화) 20:28
아동병원에서 날 새는 광주 부모들 얘기 들어보니
“일찍 안 오면 당일 진료 못 받을 수도”…진료 시작 전 30~40명 대기
새벽 5시 20분 대기표 발급기 켜지자 10여명 순식간에 번호표 뽑아
소아전문의 있는 아동병원 선호…초등학교 한 반 10여명 독감 결석도

11일 오전 6시 20분께 광주시 북구 북구미래아동병원에서 부모들이 진료 접수 대기표를 뽑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광주 지역 아동병원 곳곳에서 새벽 3~4시부터 밤을 새서 진료를 기다리는 ‘오픈런’이 일상화되고 있다.

아동병원과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부족한데 부모들은 아동병원만 선호하고, 최근 독감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부모들의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11일 새벽 5시 20분께 광주시 광산구 운남동의 광산수완미래아동병원에는 건물에 불이 켜지기도 전에 10여 명의 부모들이 진료 접수 대기표를 발급받기 위해 몰려들어 있었다.

병원 진료는 오전 9시부터 시작하지만, 이들 부모는 새벽 3시께부터 병원을 나와 밤을 새고 있었다. 오전 9시 진료가 시작될 무렵에는 평일에도 불구하고 대기 번호가 40번을 넘기고, 주말에는 60~70번대를 훌쩍 넘기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것이다.

부모들은 “독감 환자가 급증하면서 진료 대기시간이 3~4시간은 기본”이라며 “입원 가능한 아동병원이 부족해 사람이 몰리면서 일찍 오지 않으면 당일 진료를 못 받을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새벽 5시 40분께 수완미래아동병원에 도착한 박영훈(44)씨는 “5살 딸아이 감기 진료 예약하러 왔다”며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기본 2시간, 길게는 4시간까지도 기다려봤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은 편인데 요즘 독감·감기 시즌이라 더 많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다른 병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광주시 북구 오치동 북구미래아동병원은 오전 6시 30분 번호표 발급이 개시되기 전부터 이미 12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이들은 “아이 진료를 본 후 입원을 하게 되면, 입원실 자리가 부족해 대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올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새벽 4시께 첫 번째로 병원에 도착했다는 김양수(45·북구 삼각동)씨는 “지난 토요일에는 오전 7시 30분에 왔는데도 대기번호가 70번이었다”며 “독감철에는 대기자가 평소보다 2~3배로 늘어나는데 북구에서 입원이 가능한 아동병원은 두세 곳뿐이라 다들 일찍 온다”고 말했다.

광산구 신가동의 광주중앙아동병원도 오전 진료 시작 40분 전인 7시 50분께 이미 14명이 대기 중이었으며, 같은 시각 북구 양산동 아이맘아동병원도 5명의 부모가 오픈런을 했다.

이처럼 아동병원 환자가 ‘포화’된 원인으로는 아동병원 수, 의사 수 자체가 턱없이 적다는 점이 지목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소아청소년 의료체계 개선 방안 연구’ 자료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기준 광주·전남의 2차 의료기관 중 ‘아동병원’은 광주 12곳, 전남 4곳뿐이다. 1차 의료기관인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광주 42곳, 전남 25곳이다.

소아청소년 인구 1000명당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2022년 기준)에 의하면 광주는 0.97명, 전남은 0.59명으로 1명도 안되는 수준이다.

부모들은 오픈런 등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종합병원 응급실이나 내과, 이비인후과 등을 가기보다 아동병원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아동을 위한 시설과 진료 체계가 갖춰져 있고 아동에게 적합한 진료를 정확하고 빠르게 해 준다는 것이다. 다른 병원을 갔더니 약이 잘 듣지 않거나 아이 상태를 세밀하게 봐주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는 부모들도 있었다.

한예슬(여·38·동림동)씨는 “새벽에 열이 심하게 나는 응급 상황에 대학병원도 가 봤지만, 결국 임시처방밖에 되지 않아 해열제로 버티다 아동병원을 찾게 되더라”고 말했다.

세 아들을 키우는 조창근(39)씨는 “예전에 다른 병원에서는 단순 감기로만 봤던 증세를 이곳 의사가 가와사키병으로 정확히 진단해 빨리 대학병원으로 연계해준 적이 있어 신뢰가 간다”고 했다.

최근 광주·전남에서 독감 유행이 번지고 있어 아동병원을 찾는 부모들의 ‘오픈런’ 고충은 날로 심해질 전망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44주차(10월 26일~11월 1일) 외래환자 1000명당 인플루엔자 의사환자 수는 22.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9명)보다 5.8배 늘었다. 연령별로는 7~12세가 68.4명으로 가장 높았고, 1~6세(40.6명), 13~18세(34.4명), 0세(11.1명) 등 소아 청소년 비율이 높았다.

광주 지역 초등학교에서도 독감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는 호소도 잇따르고 있다. 용봉동에서 거주하는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 4학년인 큰 딸 반 학생 10명이 독감으로 결석해 학교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열이 나면 등원하지 말라는 알림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근 광주 지역 맘카페에도 “우리 아이 학급 절반이 독감 확진돼 22명이 결석했다”, “유치원도 지난주에 초토화됐다”, “독감 때문에 병원 대기만 1시간 넘는다”는 글이 잇따라 게시됐다.

김원영 우리들내과 원장은 “코로나19 이후 독감이 계절 영향 없이 꾸준히 유행하는 추세라 주의가 필요하다”며 “아동병원을 찾기 전부터 집단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미리 예방접종을 서두르고, 증상이 있다면 병원 진료를 통해 타미플루 약을 처방 받거나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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