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시험 비위에 학생은 ‘시험 지옥’…공교육 불신 초래
2025년 07월 16일(수) 20:20
광주·전남 고교 비위 반복…솜방망이 처벌·제 식구 감싸기 때문
출제 관행·자료 유출 경로 등 교육청이 점검하고 개선안 모색을

/클립아트코리아

최근 광주 풍암고 기말고사 문제가 시중 기출문제를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나면서 광주·전남 지역 고교에서 되풀이되는 시험 비위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풍암고 뿐 아니라 목포 문태고, 대동고, 고려고 등 광주·전남 지역 고등학교에서 최근 몇 년 간 시험관리 비위가 끊임없이 반복됐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16일 광주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치러진 풍암고 1학년 기말고사 수학 과목에서 22개 문항 중 12개 문항이 시중 참고서와 모의고사를 베껴 출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된 12개 문항 중 5문항은 모의고사, 나머지 7문항은 시중 참고서(일등급수학·올림포스 전국연합학력평가 공통수학1 등)에서 베낀 것으로 확인됐다. 풍암고는 지난 9일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고 이같은 사실을 확인, ‘광주시교육청 고등학교 학업성적관리 시행지침’에 따라 시험의 공정성이 훼손된 것으로 판단해 17일 재시험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풍암고 외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최근 시험관리 비위가 반복되고 있다.

이달 초 목포 문태고에서는 지난 11일 2학년 39명이 치른 물리 과목 기말고사 24개 문항 중 6개 문항이 시중 참고서 문제를 베껴 출제된 사실이 드러났다. 문태고도 17일 재시험을 치른다

지난 2022년에는 국제고에서도 2학년 국어 교과 독서과목 문제 26개 문항 중 13개가 일선 학원 문제지와 일치해 중간고사가 다시 치러졌다.

2019년에는 고려고 교사들이 특정 상위권 학생들에게 사전에 시험문제를 유출했고 2018년 대동고에서는 행정실장과 학부모가 공모해 시험지를 유출하는 일도 발생했다.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광주 관내 공·사립 고등학교 69개교에서 지난해 총 239건의 지필평가 재시험이 치러졌다. 지난 2020년 210건, 2021년 197건, 2022년 164건, 2023년 197건, 2024년 239건 등 재시험 건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학부모 사이에서는 학교의 관리 부실, 교사의 무책임, 시험관리 체계 부실 등을 개선할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풍암고의 경우 교사 3명이 공동 출제하고 검토까지 했는데도 문제 인식을 전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시험은 공동 출제·검토로 진행되지만 실제로는 시험 범위 담당 교사가 주도적으로 출제하고, 나머지 교사들은 성취기준 부합 여부 등에 대해서만 확인하다 보니 공동 검토 과정에서 실효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시험문제 관련 비위가 발생해도 교사 등에게 ‘솜방망이’ 징계가 내려져 왔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인사권이 법인 이사장에 있다 보니 ‘제 식구 감싸기’식 대응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시교육청은 지난 2022년 대동고 ‘시험지 컨닝’ 사건 이후 감사를 벌여 대동고 교장에게 중징계(정직 1개월), 교감과 행정실장에게는 경징계(감봉 2개월)를 요구했다. 당시 우성학원은 인사위원회 재구성 등을 이유로 징계위원회 개최를 7개월여 미룬 뒤, 교장에 대해 경징계인 감봉 2개월로 제멋대로 의결했다가 물의를 일으켰다.

고려고는 2019년 문제유출 사건 당시 광주시교육청이 요구한 징계 의결을 하지 않다가 2022년 4월 300만원 과태료 처분을 받기도 했다. 당시 광주시교육청은 정직 3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3년 넘게 징계 의결을 하지 않다 2022년 7월 징계 시효를 넘겼다.

광주시교육청은 이번 풍암고 사건에 대해서도 학교 관리자 및 평가 담당자 연수를 실시하고 평가 문항 체크리스트에 전재 항목 강조 등 공동 출제·검토를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았으나, 근본적인 개선안과는 거리가 있다.

기간제 교사 한 명에게 시험 출제와 책임이 모두 집중되는 등 불합리한 시험 출제 구조도 개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목포 문태고의 경우 기말고사의 출제와 채점, 검토까지 모두 기간제 교사 1명에게 맡겨진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국·영·수 등 필수과목과 달리 수강하는 학생이 적은 선택과목의 경우, 여러 명의 교사가 동시에 담당하기 어려워 공동 출제·교차 검토 등의 ‘이상적 시스템’이 사실상 운영될 수 없는 실정이다.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상임활동가는 “교사 개인의 책임을 분명히 묻되 교육 당국이 교사가 출제한 문제에 대한 저작권을 확실히 보호해야 한다”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시험관리 출제관행, 자료 유출 경로 등 교육청이 근본부터 점검하고 개선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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