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일상 속 작은 차별’ 해소 앞장서겠다”
2025년 07월 14일(월) 19:55
노동자 인권 지키기 앞장…보성 출신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
이주노동자 이름표 안전모·작업복 세탁소 등 프로젝트 진행
겨울옷 기증·포크 나눔 캠페인…“노동자 삶 건강하게 바뀌길”
“한국에 온 지 2년이 넘었는데 누군가 이름을 불러준 게 처음이에요.”

지난달 해남 대한조선에서 진행된 전남노동권익센터 ‘이주노동자 안전모 전달식’에서 자신의 이름과 나라, 혈액형이 새겨진 안전모를 받아든 이주노동자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야” 또는 비속어로 불리며 인권을 존중받지 못했던 이주노동자들은 타국에서 불린 자신의 이름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전국에서 최초로 ‘이주노동자 이름 불러주기 캠페인’을 시작한 전남노동권익센터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단체를 이끌고 있는 보성 출신 문길주(54·사진) 센터장은 이주노동자와 광주·전남 노동자들의 ‘일상 속 작은 차별’의 해소가 중요하다고 믿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문 센터장의 인권 존중에 대한 열망은 1991년 참교육을 외치며 분신한 보성고 후배 김철수 열사가 시발점이 됐다. 이후 대학생 때 봉사를 위해 찾은 하남산단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프레스에 손이 끼고 미끄러운 철판에 넘어지는 등 일하다 다치는 모습을 보며 노동자들의 권익을 높이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가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거치며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고충은 ‘작업복 세탁’이었다. 대기업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작업복을 세탁해 주지만 50인 미만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석유화학, 고무 등 발암물질이 묻은 작업복을 집에서 세탁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문 센터장은 2013년 광주하남근로자건강센터를 거쳐 2020년 전남노동권익센터장을 역임하며 꾸준히 작업복 세탁소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2021년 광주에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光클리닝’이 문을 열었다. 이후 2년 만에 여수와 영암에도 세탁소가 세워졌다.

“작업복 세탁소 건립에 대한 필요성을 정부와 유관기관에 전달했지만 바뀌는 게 없었습니다. 사례가 없다 보니 노동계에서도 ‘유난이다’, ‘또라이다’ 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죠. 외롭고 힘들었지만 노동자들의 삶이 건강하게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문 센터장은 한국노동자들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인권 챙기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전남의 한 농공단지에서 노동인권을 교육을 진행하던 중 한 이주노동자를 ‘어이 여기’라고 불렀다가 ‘저도 이름 있어요!’라는 핀잔을 받았다. 이때 머리를 한대 맞은 듯했고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한겨울 해남과 목포의 이주노동자 업장을 찾아갔을 때의 충격도 잊지 못한다. “너무 춥다”며 덜덜 떨면서도 겨울을 나기 위한 옷으로는 따뜻한 본국에서 가져온 얇은 반팔이 전부였던 것. 그는 곧바로 공기업, 전남도청 등에 요청해 ‘장롱 다이어트’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결과 현대삼호중공업 등 대기업에서 5100여벌, 도민 기부 1200여벌 등 6300여벌의 겨울 옷이 기증됐고 이주노동자들에게 전달됐다.

젓가락질이 서툴러 밥을 느리게 먹고, 피해를 준다며 왕따까지 당하는 사례를 듣고 ‘이주노동자 포크 나눔 캠페인’을 열기도 했다.

문 센터장은 “노동자들은 일상 속 작은 차별에서 큰 상처를 받고 불편함을 느끼는데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식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며 “이름을 불러주는 것부터 젓가락을 사용하는 일까지 일상 속 작은 차별에 접근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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