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역사 속 수집과 진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2025년 03월 14일(금) 00:00 가가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호기심과 욕망의 방, 이은기·유재빈 지음
두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집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먼저 취향이 비슷해야 하고 분야에 대한 관심사도 어느 정도 유사해야 한다. 한 권의 책에는 나름이 통일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 예술은 시각이나 관점이 다른 분야보다 중요하다. 선호나 흥미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모녀가 저자로 참여했다는 것은 취향이나 관심, 시각 등이 대체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흔히 말하는 모전여전(母傳女傳)은 대물림의 산물이다. 특정한 분야에서의 성취 일테면 학문적, 예술적 성취 등은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어머니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은기 목원대 명예교수와 유재빈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모녀지간이다. 어머니는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사학자로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을 매개로 한 여성상에 관심이 많다. 딸은 조선후기 물질문화와 여성 미술에 흥미를 갖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들 모녀가 펴낸 ‘호기심과 욕망의 방’은 한마디로 미술품 수집과 진열에 대한책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동서양의 수집과 진열을 다룬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물이나 예술품을 모으곤 했다. 관심 분야에 따라 수집품은 다르다. 식물학자는 식물의 표본을 토대로 분류를 하고, 고인류학자는 뼈 등을 모아 당대 인류의 삶과 문화를 연구했다. 오늘날 인정받는 문화재나 세계문화유산은 그러한 과정을 거쳐 반열에 올랐다.
미술품은 가장 각광을 많이 받는 수집품이다. 오늘날 세계의 미술관에 걸린 명화는 당초 누군가의 소장품이었다.
책은 동서양 역사에서 수집과 진열에 얽힌 서사를 담아낸다. 15세기 이탈리아에는 스투디올로라는 작은 방이 있었다. 이 방은 후일 갤러리로 변모하게 된다. 이탈리아 도시국가 군주들은 이탈리어로 ‘서재’라는 의미의 스투디올로를 갖추고 있었다.
영어로는 명사 ‘스터디’에 해당하는데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이곳은 과시의 공간이었다. 군주들은 화가나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하고 진열했다. 르네상스 시기 미술품 수집은 메디치 가문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용병대장이었던 우르비노의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는 인문주의를 지향했다. 그는 군인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미술품 주문 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스투디올로에는 초상화가 가득하다. 그리스 천문학자, 초기 기독교시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가톨릭 성인과 교황도 있다.
알프스 북쪽 독일어권에서는 수집품을 분더카머에 진열했다. 독일어로 분더는 ‘놀라움’, ‘경탄’의 의미이며 카머는 ‘방’을 의미한다. 16~17세기에는 수집에 대한 열풍이 왕, 군주 외에도 상인에까지 일반화됐다.
북쪽 독일어권 가운데 신성로마제국의 환제 루돌프 2세는 수집 규모가 상당히 컸다. 유명화가들 작품을 수집하고 미술가에게 작위까지 줬다. 궁을 새로 건립하면서 거대한 전시 공간을 들일 만큼 예술품 모집에 적극적이었다.
중국은 수집의 역사가 유구한 문명권이었는데 특히 청의 건륭제는 서화뿐 아니라 불교, 도교회화도 모을 만큼 미술품을 애호했다. 다양한 수장품이 들어있는 다보격(多寶格)은 민족과 문화를 융합한 청 나라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의 수집 문화를 얘기할 때 가장 주요한 사물은 책거리(책가도)다. 18세기에 그려졌고 19세기에 일반화됐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이형록의 ‘책가도’는 책을 비롯해 골동품, 장식품이 가득하다. 채색을 입힌 도자기 등 당시 조선에서 만들지 않았던 수입품도 비치돼 있다.
당시 수장품 목록과 책거리 기물은 분명한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은 실제와 허상의 차이이다. 또한 그것은 개인적 취향과 대중적 선호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서해문집·2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특히 예술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 예술은 시각이나 관점이 다른 분야보다 중요하다. 선호나 흥미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이은기 목원대 명예교수와 유재빈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모녀지간이다. 어머니는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사학자로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을 매개로 한 여성상에 관심이 많다. 딸은 조선후기 물질문화와 여성 미술에 흥미를 갖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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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가의 수집공간인 우디치 건물에 있는 큰 방인 트리부나. |
미술품은 가장 각광을 많이 받는 수집품이다. 오늘날 세계의 미술관에 걸린 명화는 당초 누군가의 소장품이었다.
책은 동서양 역사에서 수집과 진열에 얽힌 서사를 담아낸다. 15세기 이탈리아에는 스투디올로라는 작은 방이 있었다. 이 방은 후일 갤러리로 변모하게 된다. 이탈리아 도시국가 군주들은 이탈리어로 ‘서재’라는 의미의 스투디올로를 갖추고 있었다.
영어로는 명사 ‘스터디’에 해당하는데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이곳은 과시의 공간이었다. 군주들은 화가나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하고 진열했다. 르네상스 시기 미술품 수집은 메디치 가문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용병대장이었던 우르비노의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는 인문주의를 지향했다. 그는 군인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미술품 주문 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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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이형록의 ‘책가도’ |
알프스 북쪽 독일어권에서는 수집품을 분더카머에 진열했다. 독일어로 분더는 ‘놀라움’, ‘경탄’의 의미이며 카머는 ‘방’을 의미한다. 16~17세기에는 수집에 대한 열풍이 왕, 군주 외에도 상인에까지 일반화됐다.
북쪽 독일어권 가운데 신성로마제국의 환제 루돌프 2세는 수집 규모가 상당히 컸다. 유명화가들 작품을 수집하고 미술가에게 작위까지 줬다. 궁을 새로 건립하면서 거대한 전시 공간을 들일 만큼 예술품 모집에 적극적이었다.
중국은 수집의 역사가 유구한 문명권이었는데 특히 청의 건륭제는 서화뿐 아니라 불교, 도교회화도 모을 만큼 미술품을 애호했다. 다양한 수장품이 들어있는 다보격(多寶格)은 민족과 문화를 융합한 청 나라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의 수집 문화를 얘기할 때 가장 주요한 사물은 책거리(책가도)다. 18세기에 그려졌고 19세기에 일반화됐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이형록의 ‘책가도’는 책을 비롯해 골동품, 장식품이 가득하다. 채색을 입힌 도자기 등 당시 조선에서 만들지 않았던 수입품도 비치돼 있다.
당시 수장품 목록과 책거리 기물은 분명한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은 실제와 허상의 차이이다. 또한 그것은 개인적 취향과 대중적 선호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서해문집·2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