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미술관을 소개합니다-고흥 남포미술관
2025년 07월 01일(화) 17:05 가가
폐교된 선친의 학교에 예술의 꽃 심은지 20년
지역민과 문화예술을 나누고 좋은 기획으로 명성
지역민과 문화예술을 나누고 좋은 기획으로 명성


지난 2005년 낡은 폐교를 리모델링한 남포미술관은 올해 전남도가 선정한 ‘유니크 베뉴’에 이름을 올리는 등 전국적인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미술관 앞 마당에 설치된 박승모 작가의 ‘색소폰’. /박진현 기자
고흥에선 우주항공축제 못지않게 관람객들로 북적이는 곳이 또 하나 있다. 나로우주센터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남포미술관(관장 곽형수, 고흥 영남면 팔영로 1081)이다. 지난 2005년 낡은 폐교를 리모델링한 미술관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고흥에 온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준 덕분에 ‘전국구 미술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흥 팔영산 자락에 자리한 남포미술관은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백여 종의 꽃과 나무들이 일 년 내내 화려한 색의 향연을 뽐내기 때문이다. 봄의 전령인 철쭉, 작약이 지고 나면 여름에는 백일홍이, 가을에는 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4년 만에 다시 찾은 미술관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교문을 열고 운동장으로 들어서자 정중앙에 길다란 모양의 잔디밭이 눈에 띈다. 오래전 까까머리 학생들이 공을 차거나 달리기를 하며 뛰어 놀았던 곳이다. 수십여 개의 계단을 오르니 아담한 2층 건물이 자태를 드러낸다.
입구에 다가서자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문패’가 시선을 잡아 끈다. ‘민간정원 제10호’(2019년 등록)라고 적힌 동판 위에 내걸린 ‘전남 유니크베뉴(Unique Venue)2025’이다.
지난 3월 전남도와 전남관광재단으로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특색과 매력을 지닌 이색 마이스(MICE) 명소로 지정된 것이다. 부친에 이어 2대째 뜨거운 열정과 도전으로 척박한 땅에 문화예술의 꽃을 피운 곽형수 관장의 헌신이 이뤄낸 쾌거다.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은 남포미술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해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화이트톤으로 마감된 건물 내부는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적인 미술관의 모습이다. 한때 학교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깔끔하면서도 모던하다. 교장 선생님이 사용했던 교장실은 관장실로 이름이 바뀌었고, 교사들이 머물렀던 교무실은 학예실로 간판을 달았다. 변하지 않은 건 복도와 교실이다.
취재차 방문했던 날은 미술관의 컬렉션을 한자리에 모은 소장품 상설전이 열리고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구입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하나 둘씩 모은 2000여 점 가운데 100여 점을 엄선해 우주항공축제 기간에 맞춰 기획한 전시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전시장에 내걸린 오승윤, 박은용, 윤애근 등 작고 작가에서부터 오견규 등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흥미로운 눈길로 관람했다.
남포미술관은 웬만한 공립미술관을 뛰어넘는다. 예향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미술관이 없었던 전남에서 개관 이후 미술계의 ‘문제적 사건’들을 잇따라 선보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소록도 주민들과의 콜라보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통해 남포미술관은 시골 미술관에서 전국구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하지만 남포미술관은 개관 당시만 해도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다. 지난 2005년 2월 문닫은 폐교를 리모델링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리적 한계로 ‘롱런’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도시의 갤러리나 미술관들도 운영난을 호소하고 있는데, 시골 미술관은 오죽 하겠는가. 그것도 갈수록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농촌에서 말이다.
남포미술관이 주변의 기우를 깨고 사립미술관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건 순전히 곽 관장의 땀과 눈물 덕분이다. 선친인 고 곽귀동 선생의 유지로 건립된 영남중학교가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문을 닫게 되자 그는 ‘매각’ 대신 돈도 안 되는 미술관을 짓기로 했다. 실제로 폐교 당시 한 건설업체에서 학교 부지 일부를 공사장 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거액을 제시했지만 곽 관장은 이 ‘달콤한 제안’을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포미술관은 2층 학교 건물과 부지를 포함해 3000여 평(8200㎡), 연면적 965.13㎡ 규모다. 대형시설이 들어서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곽 관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1967년 학교법인 팔영학원으로 설립된 이후 2003년 36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폐교되기까지 36년 간 사재를 털어가며 후학양성에 힘쓴 선친의 뜻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학교를 운영하느라 평생을 고군분투한 선친을 지켜봤던 곽 관장에게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선친의 호를 딴 ‘남포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지만 현실은 생각 보다 녹록치 않았다. 워낙 오래된 학교였던 터라 매년 보수비용으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는가 하면 평균 6~8차례 여는 기획전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사재를 쏟아 붓는 바람에 한때 빚더미에 오르기도 했다. 급기야 부관장인 조해정 여사와 노후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모아둔 예금과 미술관 앞 정원에서 수십 년간 키운 나무들까지 처분해야 했다. 또 기획전을 개최하기 위해 전국 미술관과 소장자들을 찾아다니며 허리를 굽히기도 했다.
남포미술관은 개관 이후 공공성이 강한 프로젝트와 내실있는 기획으로 독보적인 위상을 보여왔다. 지난 2012년 지역 최초로 전국 미술관장 회의를 유치했는가 하면 지난 2007년 ‘옛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보다’를 주제로 열린 민화전 때는 20일간 4000여 명이 찾는 진기록을 세웠다. 또한 나로우주센터와 함께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사업을 진행했고 지난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크라우드 펀딩으로 국립소록도병원 뒤편에 대형벽화 ‘염원·소록의 꿈’을 제작해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국립소록도병원과의 연계사업은 매우 특별하다. 곽 관장은 지난 2011년~2014년까지 총 14회에 걸쳐 소장품(총 1200점)을 무상으로 대여했고 특별 기획전 ‘아기사슴-희망을 나누다’, ‘소록도-행복한 웃음으로 피어나다’(2011년), ‘경계를 넘어 마주보다’(2016년)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또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인생, 유희자적을 꿈꾸다’(2012년), ‘소록도 미술아카데미’(2018~2019년) 등 총 140회의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했다. 지난해에는 천경자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색채의 향연’전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특히 지난 5월에는 (사)한국박물관협회(회장 조한희)가 주최하는 ‘제 28회 자랑스런 박물관인상’에 남포미술관 곽형수 관장이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그는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화불모지에서 사립미술관 지킴이로 ‘벼텨온’ 시간을 담담하게 회고했다.
“20년간 미술관을 가꾸고 운영하다보니 그 20년의 세월이 스치는 바람처럼 지나가 버렸습니다. 우리 미술관의 특별한 자랑거리는 지역민과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시골이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문화예술을 우리 지역민들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남포미술관에는 방문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공간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 미술관 1층에 꾸며진 카페는 명소다. 예전 학생들이 쓰던 책상과 의자를 그대로 재활용해 만든 테이블 세트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화사한 꽃과 나무는 힐링 그 자체다.
또한 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박승모 작가의 대형 작품 ‘밀레의 이삭줍기’(230×470×10cm, 스테인레스 스틸)와 운동장 한가운데 자리한 ‘색소폰’(400×220×70cm, 스테인레스 스틸)은 대표작이다. 경남 산청 출신의 박 작가가 곽 관장의 헌신에 감동을 받아 기증한 작품들이다. 지난 2011년 조각가 7명과 함께 참여한 기획전 ‘움직이는 예술마을’로 남포미술관과 첫 인연을 맺은 그는 고흥군민들의 문화향유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조건 없이 고가의 작품 2점을 선뜻 내놓았다.
미술관에서 밖으로 나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인 정원이 기다린다. 널찍한 운동장의 앞옆에는 튤립, 모란 등 화사한 꽃과 연록색 나무들이 어우러진 말 그대로 ‘꽃의 향연’이다. 전남도 지정 민간정원 1호라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정원 한켠에 자리한 ‘화담정’(花潭亭)에 앉아 즐기는 여름 풍광이 그림 같다. 경운기와 트럭을 타고 나들이 오는 곳, 소록도 주민에서 부터 내로라 하는 명사가 다녀가는 미술관. 어디 이런 미술관이 세상에 또 있을까.
/글·사진=박진현 기자 jhpark@kwangju.co.kr
4년 만에 다시 찾은 미술관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교문을 열고 운동장으로 들어서자 정중앙에 길다란 모양의 잔디밭이 눈에 띈다. 오래전 까까머리 학생들이 공을 차거나 달리기를 하며 뛰어 놀았던 곳이다. 수십여 개의 계단을 오르니 아담한 2층 건물이 자태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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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남포미술관이 기획한 ‘소록도병원 옹벽 벽화 제작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2년도 대국민 참여 크라우드 펀딩사업’으로 선정돼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
취재차 방문했던 날은 미술관의 컬렉션을 한자리에 모은 소장품 상설전이 열리고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구입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하나 둘씩 모은 2000여 점 가운데 100여 점을 엄선해 우주항공축제 기간에 맞춰 기획한 전시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전시장에 내걸린 오승윤, 박은용, 윤애근 등 작고 작가에서부터 오견규 등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흥미로운 눈길로 관람했다.
남포미술관은 웬만한 공립미술관을 뛰어넘는다. 예향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미술관이 없었던 전남에서 개관 이후 미술계의 ‘문제적 사건’들을 잇따라 선보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소록도 주민들과의 콜라보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통해 남포미술관은 시골 미술관에서 전국구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하지만 남포미술관은 개관 당시만 해도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다. 지난 2005년 2월 문닫은 폐교를 리모델링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리적 한계로 ‘롱런’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도시의 갤러리나 미술관들도 운영난을 호소하고 있는데, 시골 미술관은 오죽 하겠는가. 그것도 갈수록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농촌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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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국박물관협회의 ‘자랑스런 박물관인상’을 수상한 곽형수 관장. |
하지만 곽 관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1967년 학교법인 팔영학원으로 설립된 이후 2003년 36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폐교되기까지 36년 간 사재를 털어가며 후학양성에 힘쓴 선친의 뜻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학교를 운영하느라 평생을 고군분투한 선친을 지켜봤던 곽 관장에게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선친의 호를 딴 ‘남포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지만 현실은 생각 보다 녹록치 않았다. 워낙 오래된 학교였던 터라 매년 보수비용으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는가 하면 평균 6~8차례 여는 기획전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사재를 쏟아 붓는 바람에 한때 빚더미에 오르기도 했다. 급기야 부관장인 조해정 여사와 노후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모아둔 예금과 미술관 앞 정원에서 수십 년간 키운 나무들까지 처분해야 했다. 또 기획전을 개최하기 위해 전국 미술관과 소장자들을 찾아다니며 허리를 굽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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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미술관의 화담정은 수백 여종의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곳으로, 전남도로부터 민간정원 1호로 지정됐다. |
무엇보다 국립소록도병원과의 연계사업은 매우 특별하다. 곽 관장은 지난 2011년~2014년까지 총 14회에 걸쳐 소장품(총 1200점)을 무상으로 대여했고 특별 기획전 ‘아기사슴-희망을 나누다’, ‘소록도-행복한 웃음으로 피어나다’(2011년), ‘경계를 넘어 마주보다’(2016년)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또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인생, 유희자적을 꿈꾸다’(2012년), ‘소록도 미술아카데미’(2018~2019년) 등 총 140회의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했다. 지난해에는 천경자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색채의 향연’전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특히 지난 5월에는 (사)한국박물관협회(회장 조한희)가 주최하는 ‘제 28회 자랑스런 박물관인상’에 남포미술관 곽형수 관장이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그는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화불모지에서 사립미술관 지킴이로 ‘벼텨온’ 시간을 담담하게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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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미술관이 올해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소장품 상설전. |
남포미술관에는 방문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공간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 미술관 1층에 꾸며진 카페는 명소다. 예전 학생들이 쓰던 책상과 의자를 그대로 재활용해 만든 테이블 세트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화사한 꽃과 나무는 힐링 그 자체다.
또한 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박승모 작가의 대형 작품 ‘밀레의 이삭줍기’(230×470×10cm, 스테인레스 스틸)와 운동장 한가운데 자리한 ‘색소폰’(400×220×70cm, 스테인레스 스틸)은 대표작이다. 경남 산청 출신의 박 작가가 곽 관장의 헌신에 감동을 받아 기증한 작품들이다. 지난 2011년 조각가 7명과 함께 참여한 기획전 ‘움직이는 예술마을’로 남포미술관과 첫 인연을 맺은 그는 고흥군민들의 문화향유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조건 없이 고가의 작품 2점을 선뜻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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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미술관의 야외공원에는 다양한 조각작품들이 자리해 또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
/글·사진=박진현 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