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의 관점에서 한국 사상을 다시 본다
2025년 03월 14일(금) 00:00
문명전환의 한국사상-황정아 외 지음
19세기 우리 땅에서 태동해 독자적인 사유의 장을 펼쳐온 ‘개벽사상’이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아가 개벽에 바탕을 둔 한국사상은 전쟁과 기후재난, 생태문제 등 ‘오늘날의 문명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K-사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간 ‘문명전환의 한국사상’은 지난 2022년 5월 출간된 ‘개벽의 사상사: 최제우에서 김수영까지, 문명전환기의 한국사상’의 후속편이다. 전작이 수운 최제우과 만해 한용운, 도산 안창호, 함석헌 선생, 김수영 시인 등을 중심으로 근대전환기 개벽사상을 살펴보았다면, 이번 책은 소태산 박중빈과 혜강 최한기, 서우 전병훈, 염상섭 소설가, 신동엽 시인, 무위당 장일순, 김지하 시인들을 통해 더 한층 개벽사상 속으로 파고든다.

엮은이 황정아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문학평론가)는 ‘책을 펴내며’에서 “그처럼 발본적인 문명전환의 다른 이름이 개벽이며 한국사상의 주요한 핵심 역시 개벽에 있음을 다양한 사상적 서사를 통해 밝히는 것이 이 책에 실린 글들의 공통적 지향점”이라며 “개벽의 의제가 역사적 개벽사상이 쇠퇴하여 거의 잊히는 듯 보일 때조차 곳곳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거듭 되살아나고 있었음을 확인함으로써 바로 그런 계승과 복원에 보탬이 되려는 것이 이 책이 품은 목표이자 야심이다”고 밝힌다.

신간은 크게 ‘동학의 수도(修道)와 개벽운동’(정혜정 동국대 갈등치유연구소 학술연구교수)과 ‘소태산 박중빈의 정신개벽 사상과 변혁적 중도주의’(허석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개벽의 인간학과 사회변혁론’(이행훈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개벽사상과 한국의 생명운동-장일순과 김지하를 중심으로’(김용휘 대구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동아시아의 수양론으로 개벽사상 다시 읽기’(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 등 10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필자들은 동학을 불교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소태산의 정신개벽 사상을 중도적 실천노선으로 재평가하는 등 개벽사상을 다각도로 탐색한다.

민주주의 후퇴와 기후재난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각종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살아있는 지혜로서 개벽사상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집회에서 응원봉을 들고 윤석열 대통령 즉각 파면을 촉구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는 ‘용담유사’에서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태평성세 다시 정해 국태민안 할 것이니”라고 했다. 19세기 중엽 탄생한 개벽사상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동엽 시인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같은 시들에도 개벽사상이 녹아들어 있다. 김용휘 교수는 7장 ‘개벽사상과 한국의 생명운동’에서 “개벽은 ‘우주적 순환원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도래할 새로운 세상’, 동시에 그것에 수반하는 ‘물질적·정신적 대변혁’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당도할 역사적 사건이자 ‘새로운 문명의 대전환’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강조한다. 장일순 선생은 ‘생명의 위기의 시대에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개벽적 사유로서의 생명사상을 제시’하고 ‘새로운 문명의 실천적 사유와 운동으로 재해석’했다. 김지하 시인 또한 감옥 쇠창살 틈과 콘크리트 바닥에서 싹을 틔운 풀을 보며 ‘생명’을 자각했다.

‘문명전환’과 ‘한국사상’, ‘개벽’ 이라는 3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10명의 필자들이 들려주는 개벽 사상 이야기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떨림’과 ‘울림’을 남긴다. 백영서 교수는 10장 ‘동아시아의 수양론으로 개벽사상 다시 읽기’를 통해 ‘개인수양과 사회변혁의 동시수행을 감당하며 개벽의 경지에 다가가려는 삶의 자세, 개벽적 수양론’을 제시한다.

“개벽적 수양의 길을 닦는 이들 공동체가 어디서든 -기존 종교의 안이든 밖이든, 어느 사회·국가에서든- 종교다운 종교, 민주화된 정치를 각각 추구하며 동시에 양자를 결합시키겠다는 큰 뜻을 품은 채 그때그때 거두는 작은 성취는 문명대전환의 동력이다. 그것은 각자의 현장에서 자기 자신과 사회시스템을 동시에 변혁하는 마음 공부법을 신축성있게 일상적으로 함께 끊임없이 단련하는 도정에서 거두어질 터이다.” <창비·2만40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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