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금기사항- 오광록 서울본부 부장
2025년 01월 24일(금) 00:00
명절 연휴 금기사항이 몇 가지 있다. 젊은 친척에게는 취업, 결혼, 출산에 대한 질문을 하면 안된다. 학생에게는 성적과 입시에 대해 묻는 것도 금기에 포함된다. 2025년 설 연휴에는 가급적 정치 이야기도 줄여야 할 상황이 됐다. ‘12·3 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양 극단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는 탓이다.

자칫 잘못 꺼낸 정치 이야기는 풍성하게 차려진 잔칫상만 뒤엎어야 하는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을 지경이다. 명절에 싸우면 화해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싸웠으니 다시 만나는 것도 힘들 수 있다.

명절 민심에 따라 선거 판세가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 정설처럼 여겨진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부터 2020년 21대 총선까지 4번의 총선 결과를 살펴보면, 전년도 추석 직후에 실시된 여론조사와 이듬해 총선 결과가 거의 일치하면서 ‘명절 효과’는 일종의 ‘과학’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따라 명절 연휴를 앞두고 각 정당 지도부뿐 아니라 지역구 의원들도 민심을 잡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현역 국회의원은 서둘러 지역구를 찾아 조직을 다지고, 각 정당도 고속도로 진출입구와 터미널·기차역 등지에서 지지를 호소했다.

만약 조기대선이 치러질 경우, 올 설 연휴 민심은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이념 지형은 중도가 사라진 형국이다. 계엄에 대한 찬성과 반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나눠져 팽팽한 이념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과거 선거에서 진보와 보수 간 세 대결은 ‘중도의 선택’에 따라 무게추가 기울었다. 이 때문에 양 진영은 중도를 흡수하기 위해 각종 공약을 만들었다. 중도는 진보와 보수가 양 극단에서 조금씩 서로의 진영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효과를 주기도 했다.

중도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진영 간 ‘화합과 협력의 길’도 멀어지고 있다는 심각한 경고다. 그러니 이번 설 연휴에는 ‘정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친척’이 있더라도 가만히 두시길. 건강한 중도로 남아 있도록.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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