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와 ‘소년이 온다’가 환기하는 것-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5년 01월 22일(수) 00:00 가가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난 19일 새벽 헌정 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 서부지법에 난입한 시위대들로 법원은 쑥대밭이 됐다. 21세기 민주국가에서, G10(주요 10개국)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인가 싶다. ‘12·3 비상계엄’부터 최근 일련의 폭동은 나름 선진국이라 믿었던 우리들의 자긍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말았다.
작금의 어지러운 시국과 맞물려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게 된다. 잠시 시계를 돌려 지난 대선후보 토론회가 진행되던 2021년 10월로 가보자. 당시 윤석열 후보는 손바닥에 ‘왕’(王)이라는 한자를 쓰고 토론회에 나왔다. 윤 후보는 “우리 아파트에 다니는 몇 분이 써 줬는데 차에서 지우려 했지만 안 지워졌다”며 야권 등에서 제기한
인간의 심리 조종한 마녀들
‘주술’은 억측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추미애 예비후보는 “손바닥 ‘왕’(王) 자는 주권재민을 찬탈하겠다는 역모의 마음이 일찌감치 있었고 그가 정치검찰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부적’, ‘주술’ 등은 윤석열 후보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전임 대통령 박근혜의 몰락은 ‘최순실 게이트’가 단초가 됐지만 이면에는 주술로 대변되는 부적, 굿 등도 한 요인이었다. 당시 영국 BBC방송 등 주요 외신들은 ‘샤머니즘과 관련된 스캔들이 한국 대통령을 위협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서양에도 우리의 샤머니즘과 같은 의미의 주술사가 있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연계된 주술사는 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모티브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맥베스’는 주술사와 연계된 희곡이다. 야망에 노예가 된 인간의 파멸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특히 마녀들은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부추겨 인간의 행위와 심리를 교묘히 조종한다.
희곡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맥베스와 뱅코 장군에게 세 마녀가 다가온다. 마녀들은 멀지 않아 맥베스가 왕이 되고, 뱅코 자손들도 왕이 될 거라고 예언한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승리의 전갈을 받은 왕은 친히 마중을 나온다. 연회가 빠질 수 없다. 그날 밤 맥베스 부인은 마녀들이 남편에게 했다는 은밀한 예언을 듣게 된다. 부인은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된 것처럼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 함께 왕을 죽이기로 도모한 것은 당연지사. 그녀는 맥베스에게 ‘연회장에 가서는 겉으로는 꽃처럼 보이되 속에는 독사를 숨기라’고 조언한다. 부인의 계략과 마녀들의 예언이 맞물려 결국 왕은 맥베스 손에 죽임을 당한다.
권력을 찬탈한 맥베스와 부인은 한동안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부러울 게 없다. 그러나 불쑥불쑥 밀려드는 두려움까지 피할 수는 없다. 세 마녀가 했던 예언, 즉 뱅코우 자식이 왕이 된다는 말이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힌다. 맥베스와 부인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왕위가 뱅코우 가문에 돌아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자신들이 왕을 죽이고 권좌를 빼앗은 것처럼 뱅코우 자식도 똑같이 자신들을 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맥베스와 부인은 자객을 보내 계획대로 뱅코우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뱅코우 아들은 이들의 계략을 눈치 채고 도망을 친다. 이후 맥베스는 뱅코우 망령에 시달리고 점점 불안의 늪에 빠진다. 그러는 중에도 이들은 마녀들 주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전이 빛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 그 가치를 발하기 때문이다. ‘맥베스’는 지금의 시국과 비교하면 유사한 면이 많다. 인물과 권력 관계를 비롯해 주술, 경쟁자 등이 그렇다. ‘죽이고 싶을 만큼’ 경쟁자에 대한 강렬한 질투는 욕망의 화신이 만들어낸 망상에 다름 아니다. 맥베스와 부인은 결국 분수를 넘는 욕심과 주술에 사로잡혀 스스로 파멸에 이른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12·3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폭압과 참극의 80년 5·18이 재연되었을지 모른다. 12·12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가 자행했던 무자비한 학살 만행은 광주 시민들에게는 여전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더욱이 ‘12·3 비상계엄’은 광주 출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낭보가 전해온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생했다.
‘인간은 이토록 폭력적인가’
역설적으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이번 비상계엄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도한지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한강은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5·18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된 배경 등을 이야기했다. 열두 살 무렵 아버지 서가에 꽂힌 ‘광주 사진첩’을 보고서였는데 사진첩에는 신군부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시민들, 학생들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참혹한 사진을 본 이후 작가의 내면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들이 자리잡았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한강의 물음이 다시 떠오른 것은 시위대에 의해 자행된 ‘서부지법 습격사건’을 보고서였다. 자유와 평화는 어떤 이념이나 주의 주장에 앞서 지켜져야 할 가치다. 계엄사태 ‘내란 우두머리’가 권좌로 복귀할 수 있다는 ‘주술적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있는 것 같다. ‘맥베스’의 비극은 이성과 합리, 시스템을 무력화했던 주술 때문이었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심리 조종한 마녀들
‘부적’, ‘주술’ 등은 윤석열 후보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전임 대통령 박근혜의 몰락은 ‘최순실 게이트’가 단초가 됐지만 이면에는 주술로 대변되는 부적, 굿 등도 한 요인이었다. 당시 영국 BBC방송 등 주요 외신들은 ‘샤머니즘과 관련된 스캔들이 한국 대통령을 위협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희곡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맥베스와 뱅코 장군에게 세 마녀가 다가온다. 마녀들은 멀지 않아 맥베스가 왕이 되고, 뱅코 자손들도 왕이 될 거라고 예언한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승리의 전갈을 받은 왕은 친히 마중을 나온다. 연회가 빠질 수 없다. 그날 밤 맥베스 부인은 마녀들이 남편에게 했다는 은밀한 예언을 듣게 된다. 부인은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된 것처럼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 함께 왕을 죽이기로 도모한 것은 당연지사. 그녀는 맥베스에게 ‘연회장에 가서는 겉으로는 꽃처럼 보이되 속에는 독사를 숨기라’고 조언한다. 부인의 계략과 마녀들의 예언이 맞물려 결국 왕은 맥베스 손에 죽임을 당한다.
권력을 찬탈한 맥베스와 부인은 한동안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부러울 게 없다. 그러나 불쑥불쑥 밀려드는 두려움까지 피할 수는 없다. 세 마녀가 했던 예언, 즉 뱅코우 자식이 왕이 된다는 말이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힌다. 맥베스와 부인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왕위가 뱅코우 가문에 돌아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자신들이 왕을 죽이고 권좌를 빼앗은 것처럼 뱅코우 자식도 똑같이 자신들을 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맥베스와 부인은 자객을 보내 계획대로 뱅코우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뱅코우 아들은 이들의 계략을 눈치 채고 도망을 친다. 이후 맥베스는 뱅코우 망령에 시달리고 점점 불안의 늪에 빠진다. 그러는 중에도 이들은 마녀들 주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전이 빛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 그 가치를 발하기 때문이다. ‘맥베스’는 지금의 시국과 비교하면 유사한 면이 많다. 인물과 권력 관계를 비롯해 주술, 경쟁자 등이 그렇다. ‘죽이고 싶을 만큼’ 경쟁자에 대한 강렬한 질투는 욕망의 화신이 만들어낸 망상에 다름 아니다. 맥베스와 부인은 결국 분수를 넘는 욕심과 주술에 사로잡혀 스스로 파멸에 이른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12·3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폭압과 참극의 80년 5·18이 재연되었을지 모른다. 12·12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가 자행했던 무자비한 학살 만행은 광주 시민들에게는 여전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더욱이 ‘12·3 비상계엄’은 광주 출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낭보가 전해온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생했다.
‘인간은 이토록 폭력적인가’
역설적으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이번 비상계엄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도한지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한강은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5·18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된 배경 등을 이야기했다. 열두 살 무렵 아버지 서가에 꽂힌 ‘광주 사진첩’을 보고서였는데 사진첩에는 신군부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시민들, 학생들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참혹한 사진을 본 이후 작가의 내면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들이 자리잡았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한강의 물음이 다시 떠오른 것은 시위대에 의해 자행된 ‘서부지법 습격사건’을 보고서였다. 자유와 평화는 어떤 이념이나 주의 주장에 앞서 지켜져야 할 가치다. 계엄사태 ‘내란 우두머리’가 권좌로 복귀할 수 있다는 ‘주술적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있는 것 같다. ‘맥베스’의 비극은 이성과 합리, 시스템을 무력화했던 주술 때문이었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