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품과 기억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5년 01월 09일(목) 00:00
“우리 동혁이한테 일주일 전에 사준 운동화가 있어요. 내가 “이거 신고 가” 했더니 “여행갔다 와서 신을게요 아껴신으려고요 너무 예쁘잖아요” 그렇게 했던 애였거든요. 그 신발을 이제 올려놨어요. 거기에 빈소 위에다가.”

지난 2022년 광주에서 열렸던 ‘4·16 세월호 참사 8주기 손글씨전’에서 만난 글이다. 단정한 운동화 그림과 함께 적힌 글귀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신겠다는 운동화는 영영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엄마는 지금도 동혁이의 ‘그 운동화’를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손글씨전에서 만난 글들은 세월호 유족, 세월호 관련 사람들 100명을 인터뷰해 100권의 책으로 엮은 전집 ‘4·16 구술 증언록 ‘그날을 말하다’에 수록된 것들이다.

아이가 쓰던 조그마한 물건이라도 버릴 수 없어 마지막 남은 사람이 정리하자고 약속했다는 부부의 이야기와 딸에게 따뜻한 밥 한끼만 먹여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는 엄마의 마음도 또박또박 정성을 다해 쓴 손글씨에 담겼다.

단원고 교실을 그대로 재현한 안산 ‘416기억교실’과 인터넷 사이트 ‘416기억 저장소’에는 만화가가, 일본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간직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빠 꿈에 꼭 찾아와 주길 바란다”는 간절한 소망과 함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숨진 희생자 179명이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갔지만 주인을 찾지 못한 유류품은 여전히 공항 보관소에 남아있다. 지난 7일 오후 7시 기준 휴대전화 등 유류품 1200여 점 중 300여점만 유족에게 인도된 상태다. 장례식을 마친 유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친구의 흔적이 남아있는 물건들을 하나라도 더 간직하기 위해 미확인 유류품 보관소를 찾고 있다고 한다.

떠난 이들이 남긴 물건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랑하는 이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함께 했던 시간들이 녹아 있을 유류품이 한 점이라도 더 가족의 품에 당도하길 기도한다. 더불어 우리가 그들을 언제나 잊지 않고 기억할 때, 그들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 있을 것이다.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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