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거 대상-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4년 12월 29일(일) 22:00 가가
나치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하면서 교묘한 언어규칙을 만들어 냈다. 악명 높은 유대인 대량학살을 ‘최종 해결책’(The Final Solution)으로 불렀고 완전소개, 특별취급도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면서 안락사라고 명명했다. 사람을 고통없이 죽인다는 가증스런 의미다. 독일은 부상당한 자국 병사들에게 비밀리에 안락사를 일부 시행했고 유대인에게 대놓고 실행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말은 우리를 현실과 연결시켜 준다. 나치스가 언어규칙을 만든 이유는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죽음의 힘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다.”
광주를 피로 물들인 전두환 신군부도 현실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언어를 썼다. 계엄군이 군 공식문서에 사용한 용어는 광주 소요사태, 광주사태였다.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시민의 저항을 소요사태로 간주하는 교묘한 말장난이자 위장이다. ‘소탕작전’, ‘전과’(戰果), ‘전투 상보’도 마찬가지다. 모두 적을 대상으로 한 용어이지 국민을 대상으로는 결코 쓸 수 없는 용어다. 계엄의 주역들은 광주시민을 학살해놓고도 민간인 집단 살인사건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12·3 비상계엄을 사전 기획한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이 가관이다. 점집에서 수첩이 나왔다는 점도 이채롭지만 내용이 더 눈길을 끈다. 정치인, 언론인, 노조, 판사 등을 ‘수거 대상’으로 적시한 메모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 대사전은 수거를 ‘버리거나 내놓은 물건 따위를 거두어 감’이라고 설명한다. ‘수거’는 44년만에 다시 부활한 계엄보다 더 퇴행한 언어다. 사람을 쓰레기 취급하고 있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에도 예사롭지 않은 표현이 등장한다. ‘포고령 위반자를 계엄법에 따라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는 내용이다. 처단은 사전의 뜻 풀이 그대로 처리하여 없애거나 죽여 버린다는 의미다. 대명천지에 사람을 수거하고 처단하겠다는 계엄세력의 놀라운 어휘 사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penfoot@kwangju.co.kr
광주를 피로 물들인 전두환 신군부도 현실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언어를 썼다. 계엄군이 군 공식문서에 사용한 용어는 광주 소요사태, 광주사태였다.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시민의 저항을 소요사태로 간주하는 교묘한 말장난이자 위장이다. ‘소탕작전’, ‘전과’(戰果), ‘전투 상보’도 마찬가지다. 모두 적을 대상으로 한 용어이지 국민을 대상으로는 결코 쓸 수 없는 용어다. 계엄의 주역들은 광주시민을 학살해놓고도 민간인 집단 살인사건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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